서시(만약에) - 조은지

신이 내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면
그런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 갖고 싶은 추억 하나 있습니다

서삼릉 입구에 가면
아름드리 미루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길고 좁은길 있습니다
투명한 가을 하늘 속에 숨겨져 있는 생각들
하나 하나 꺼내 이야기하며
떨어지는 낙엽 속으로
그대와 그곳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 길 혼자 걸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녁 노을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바람도
그리고
나도
늘 주문처럼 그대의 행복을 기도합니다

달을 따라 이 길을 그대와 걷는다면
길가에 한 식구로 모여 사는 갈대나
봉숭아 꽃잎 같은 표정으로
은밀히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던 낙엽도
눈 껌벅이는 참새와 함께
날 보며 기뻐해 주지 않을까

그대와 그곳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대 잊기로 한지 두달이 지났습니다/조은지/자음과모음 20010115 118쪽 5,500원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신 때문에
이마저 추억이 되고 시가 되었다.
기억 못 하는 추억마저도
모두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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