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일의 즐거움

Freude am Garten, 1953
농촌 생활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온화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고향처럼 모든 정신적인 인간과 영웅적인 인간의 마음을 그 깊은 곳까지 끌어 당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돼 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생활이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나 성급함이 없고 걱정 따위도 없다. 그런 생활 밑바닥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잇고 식물과 동물 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126)

세계는 작아졌어. 노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평생 동안 이 노인은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고, 높은 관직들을 거쳤으며, 전세계를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괴테처럼 "모든 태양의 빛과 모든 나무들과 모든 해안, 모든 꿈을 마음속에 함께 붙들어보고 싶다."는 동경을 끊임없이 키웠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노인의 활동 공간은 그의 좁은 정원 안으로 한정되었다. 나무와 풀, 관목과 꽃 들이 자라는 화단과 친숙해진 그는 직접 화단을 가꾸고 자신의 생각대로 형태를 만들고 스스로 관리했다. 그렇다고 노인의 생활이 전보다 덜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작은 장미 화단조차 해안이나 넓은 세계처럼 감각과 관념에 의해 다 퍼올릴 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소유란 무엇이든지 제한적인 것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체념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일은, 미소와 명상을 통해 성스럽게 변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220)

중국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같은 인물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복해서 나온단다. 젊은 시절에 그 사람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무언가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그러다 조국애를 배우고 무엇보다 선조와 자손의 일을 염려하게 되지. 그는 열심히 일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 나서서 국가를 끌어가는 일을 돕는다. 그러나 결국 나이를 먹게 되자 자신이 여전히 고독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서, 어느 날 밤 집과 논밭, 아내, 하인들, 직무와 서책을 모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 이슬과 꽃잎만을 먹고살면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껍질을 모두 벗어던져 버린다. 그러고 나서 그는 不死의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된다. (246)

정원 일의 즐거움Freude am Garten, 1953/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두행숙 역/이레 20011031 324쪽 12,000원

한 세대 전에 반려동물 전성시대가 될 줄 몰랐듯이 한 세대 후에는 반려식물 전성시대가 될 것이다.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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