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이 좋아진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이정숙/산악문화
온 가족이 함께 떠난 히말라야 트레킹/한동신/다밋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김홍성, 정명경/세상의 아침
우린 숲으로 간다/이유미, 서민환/현암사

요 며칠 히말라야 트레킹과 등산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답니다. 고산병을 피하고자 아주 천천히 오르는 길은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순응하고 히말라야가 받아들여야 완주할 수 있다는군요. 인간이 저절로 겸허해지는 그런 오지도 길이 넓어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늘어나면서 점점 옛 인심을 잃어 간다며 아쉬워하고 있군요.

분기탱천하던 젊은 시절은 파괴가 곧 건설이라고 믿었답니다. 배낭에 A형 텐트를 둘러메고 떠났던 젊은 여름에 처음 찾았던 영월 어라연. 버스에서 내려 한 시간을 걸어서 가며 차가 들어갈 길이 어여 나길 기대했죠. 그 후 십여 년이 지나서 어라연을 다시 찾았을 때도 역시 한 시간을 걸어서 갔답니다. 길이 뚫려 휴가 온 차들로 도로가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걸어서 갔던 게지요. 도착한 어라연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더군요. 처음 찾았던 그때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였던 기억은 여지없이 부서졌지요.

지리산 노고단을 관통하는 길이 뚫렸을 때 이제는 쉽게 뱀사골 산채 비빔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며 속으로 내심 반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막상 야유회를 가서는 지리산에 대한 경외감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지요. 계곡에 틀어박혀 놀기 좋아하는 나 같은 놈상까지 지리산을 범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 뭡니까.

길은 새로운 문명이 소통하는 역사적 전환을 하기도 하지만 점점 넓어지며 파괴의 지름길이 되기도 하지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넓혀지는 길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가만히 놔두면 당장은 불편하고 아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숨은 가치가 서서히 나타날 텐데 조바심에 길을 냅다 뚫어 버리는 세태가 아쉬울 뿐입니다.

나무들이 아무 말 없이 반겨 주는 오붓한 길을 걸어가면 번잡한 아스팔트에서 느끼지 못하는 상쾌함이 있지요. 자신을 도드라져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슬며시 일부가 되면 오솔길이 너그러이 받아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답니다. 저 길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점점 오솔길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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