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또의 추억

벤또
오마이뉴스
강원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겨울 벤또에 대한 추억이 있다. 교실에 난로를 피게 되면서 노란 사각형 벤또에 김치를 깔고 그 위에 밥을 덮어 갔다. 계란 프라이라도 중간에 있으면 특식이었다. 등교하자마자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당번은 쌓아둔 도시락이 골고루 덮이게 수시로 위아래를 바꿔준다. 그래서 당번은 난로 바로 뒤에 앉는다. 교실에서 제일 따뜻한 곳이다. 당번은 언제라도 일어서서 도시락을 바꿔줄 수 있는 자격이 있어 수업 중에도 당당하게 일어나 작업을 하곤 했다.

60여 개 도시락을 알맞게 익혀야 하는 것도 재주라고 점심때가 되면 어떤 도시락은 아직도 냉기가 가시질 않았고 또 어떤 것은 밑에 깔린 김치가 새까맣게 타 있곤 했다. 그러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당번은 가차 없이 잘리고 자연스럽게 제일 재주 좋은 친구가 가장 따뜻한 곳에 앉아 도시락 데우는 일을 전담하곤 한다. 정말 재주가 있어 도시락 60여 개를 가장 알맞게 익혀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있다. 물론 배가 고파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 조금씩 파먹은 적도 부지기수다.

재주 좋은 그 친구를 자세히 보면 수업을 듣는 것보다도 언제 도시락 위치를 바꿔줘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 정확히 그 시간이 되면 위에 있던 도시락을 맨 아래로 놓고 맨 아래 있던 도시락을 맨 위로 올려놓곤 했다. 오전 수업시간 내내 몇 번 그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난로 위에 있던 도시락 모두를 아주 먹기 좋게 만들어 놓곤 한다.

그렇게 재주 좋은 도시락 당번 덕에 냉기가 가시지 않았거나 새까맣게 타버린 도시락을 먹는 일은 그 후로 일어나질 않았다.

골고루 익힌 도시락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엊그제 본 민심이다. 내 도시락이 새카맣게 타서 못 먹거나 미쳐 데워지질 않아 다들 점심 먹을 시간에 난로에 올려놓고 다시 데워야 하는 일이 있으면 도시락 당번은 잘리게 돼 있다. 민심은 복잡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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