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에 관한 몇 가지 단편들

1. 과장의 변천

신입사원 시절이던 90년대 초. '과장이 되면 펜대와 말을 놓는다'라고 했다. 회사에서 과장이 된다는 것은 노조에도 가입이 안 되고 사측에 속하게 된다. 과장이 되면 슬그머니 하대(下待)를 하며 펜대를 놓고, 앉아서 결재 도장만 찍는 걸 빗대서 하는 소리다. 과장이라는 직급부터 관리자라고 하였으며 실제 그랬다.

그런 과장이 바뀌게 된 것이 IMF 때다. 그 무렵부터 몇 년간 신입사원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그전에는 과장이 되면 적어도 부하직원이 분대 병력은 됐는데 그놈의 IMF 덕분에 나 홀로 과장들이 늘어났다. 후임자가 없으니 하던 일에 관리자라는 타이틀만 붙게 됐다. 관리자가 왜 그 모양이냐는 핀잔에다 담당자가 그것도 모르느냐는 질책까지 더해지게 됐다. 그 후로 쭈~욱 과장은 점점 말단이 돼가고 있다.

부장은 어떠냐고? 과장이 그럴진대 부장은 오죽 하려고. 업무시간에 신문 보는 부장들이 사라졌다. 인터넷으로 주식하고 있는지는 모니터가 안 보여 모르겠다. 다만 위안을 삼는 것이 아직 안 잘리고 월급을 받고 있다는 거.

2. 조직개편은 무식한 놈이 한다.

조직개편은 그 조직을 전혀 모르거나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주도한다. 한마디로 무식한 놈이 칼을 빼들고 조직을 수술한다. 조직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에게 시키면 백이면 백 모두 용두사미로 끝난다. 조직을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다 보면 분명히 중복되는 자리가 생기게 마련. 그 자리는 틀림없이 과장이거나 부장 자리다. 임원은 임시직원이므로 패스. 자리를 하나 없애야 하는데 김 과장을 자르자니 엊그제 얻어먹은 폭탄주가 걸리고, 박 과장을 자르자니 일요일에 골프를 같이 쳤으니 그럴 수 없고. 이리저리 고민하다 두루뭉술한 개편안이 나오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장이라는 사람은 수술하려는 조직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3의 사내 인물이나 외부 컨설팅 업체에 조직개편을 맡기게 된다. 그들은 실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몇 번 보이다가 떡하니 조직개편안을 내놓는다. 개편안에는 김 과장, 박 과장뿐만 아니라 폭탄주 먹고 골프 같이 쳤던 당신도 해당이 된다.

그들은 당신이 속한 조직의 구성원들을 속속들이 모른다. 모르는 만큼 아주 냉정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개편안을 내놓는다. 무식한 만큼 정말 합리적인 조직개편안은 내부 반발을 불러온다. 조직개편에 정답은 없지만 내부 반발이 클수록 정답에 가깝다. 반발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폭넓게 조목조목 손을 봤다는 걸 뜻하니까.

3. 조직개편에 WIN-WIN은 없다.

WIN-WIN, 상생(相生). 좋은 말이다. 그러나 세상 일에 윈윈은 없다. 다만 51:49는 존재한다.

조직개편의 목적은 효율화, 합리화, 스피드, 선진화 등등으로 포장된다. 소프트웨어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목적 달성은 더 두고 봐야 한다

조직개편의 단기적 효과는 당장 인력감축으로 나타난다. 인력감축 없는 조직개편은 윈도우 비스타를 286 도스 컴퓨터에 깔려는 꼴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하드웨어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낸다. 영역표시(자리, 위치, 권한)한 나와바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거나 줄어들거나 바뀌게 되면 불편하고 번거롭고 습관을 바꿔야 하니 무조건 반사를 하게 된다.

다만 51:49 중 51이 살아남게 돼 있기 때문에 49는 당연히 감축되게 돼 있다. 51도 살고 49도 살아나는 WIN-WIN이 아니라 51도 살고 조직도 사는 상생이 될 뿐.

혹 내부 반발이 거센 조직개편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거나 승진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릴 확률이 더 높다. 51%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 공연히 생긴 말이 아니다.

4. 샐러리맨은 정신없이 바쁘다.

기업은 일하는 곳이다. 최적의 일이라는 것을 바탕에 깔고 해마다 이벤트를 한다. 90년 초에는 5S 운동, QC 활동. 90년 중반에는 TPM. 요즘은 6-Sigma.

혹은 무슨 경영혁신 운동이니 하면서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좋게 생각하면 정량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잡생각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말이다. 요즘은 6-Sigma가 유행하지만 이것이 시들해질 때쯤 또 다른 것이 등장할 것이다.

샐러리맨은 일만 가지고 평가받지 않는다. 일만 열심히 했다고 칭찬받지 못한다. 일만 열심히 하면 월급은 받을지언정 보너스는 절대 못 받는다. 일은 이미 100점이라고 치고 이벤트를 얼마나 잘했느냐로 평가한다. 샐러리맨은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다.

국가적으로 가장 훌륭한 이벤트는 박통이 만들었고 달성했다.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전자는 뚜렷한 정량적인 목표를 정하고 산업적으로 성공했다. 후자는 정성적인 목표를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정신적으로 추진했다. 조직개편이 이벤트를 위한 준비운동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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