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효과가 숭례문을 불태우다
1. 숭례문은 왜 전소(全燒)됐을까?
숭례문은 국보 1호다.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서울대로 한복판에 서서 대한민국의 문화를 대표한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눈길이 스쳐가고 코앞에 경찰서와 소방서가 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공통영역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 숭례문에 불이나 600년을 이어오던 자존심이 밤사이에 홀라당 타버렸다. 왜 그랬을까?
문화재청은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고, 관리는 서울 중구청이 맡는다. 그나마 밤에는 무상으로 경비업체에서 관리한다. 문화재청은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관리감독을 등한시했을 것이고, 지자체는 숭례문 임자는 국가이고, 예산이나 인력도 없으니 형식상 관리하는 척했을 것이다. 경비업체는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생색내기 위한 무료봉사를 하고 있으니 짜장면 배달하듯이 번개처럼 달려갔을 리 만무하다.
서민 주택에 화재가 나서 출동한 소방차는 들입다 물만 쏴대며 불을 끄면 그만이지만 국보 1호에 불이 났으니 진화하더라도 파손이 되면 뒷감당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문화재청 눈치를 살폈을 게 뻔하다. 또 전통건물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을 테고. 그러는 사이 숭례문은 600년 가치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국가 문화재 관리에 대한 업무분장은 법적으로 잘돼 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2. 업무분장(work scope)은 왜 필요하지?
업무분장은 조직의 형태나 크기에 관계없이 존재한다. 관습적이든 문서화돼 있던 서로 고유한 업무 영역을 가지고 있다. 업무분장이 필요한 경우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잘 돌아가는 조직은 업무분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업무분장 없이도 서로 내 일처럼 챙겨서 업무의 공백이 없다. 다만, 과다한 집중으로 업무 중복이 생기고 그에 따른 비효율적인 손실을 예방하고자 work scope를 나눈다. 구성원들은 어떻게 업무의 범위를 정하든 불만이 없다.
두 번째는 조직에 뭔가 문제가 있고 조정과 협조가 안 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칼로 자른 듯이 업무의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전자는 굳이 문서화하지 않아도 묵시적 동의하에 원활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후자는 육법전서 같은 work scope를 만들어 놔도 항상 불만이 있고 빠져나갈 사각지대를 찾는다. 이럴 때는 두꺼운 업무분장이 있어도 케이스별로 다시 scope를 만든다.
3. 방관자 효과는 꼭 생긴다
업무분장을 아무리 잘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공통부문은 생기게 마련이다. 일이라는 게 만들어 놓은 업무분장표에 딱 맞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이 발생하니까 work scope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직에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work scope를 나누면 공통부분에 있는 일은 서로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겠지, 다른 부서에서 하겠지 하며 책임이 분산된다.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책임지고 하지만, 나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등한시하고 무관심해진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숭례문은 모두의 업무 영역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각지대로 만들었다. 누구나 해야 할 공통부분이 오히려 더 많은 방관자를 만들었다.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38명이나 지켜보는 가운데 무참히 살해된 것과 같다.
4. 예방책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work scope를 만든다 하더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방관자 효과를 방지하려면 공통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특별한 부분(critical work)은 특히 더 수평적 공통부분이 없거나 최소화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이 일은 네가 책임자야'라고 하는 것이 좋다.
공통부분에 대한 일을 처리할 때 상호 간에 충돌되는 문제가 대두되었을 경우에는 '내 상급자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 쉽게 해결이 된다. 서로 충돌되는 부분은 직책이 높을수록 본인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말단 사원끼리 아웅다웅하는 일도 다 과장의 일이고, 부장과 부장이 티격태격하는 일은 상무, 전무 혹은 사장의 일이다.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제 밥그릇부터 챙기다가 솥단지를 뒤 업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관리감독 기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의 권한 위임은 스포츠에서 감독과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는 선수에게 믿고 맡기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전략을 짤뿐만 아니라 각 선수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면서 경기를 이끌어 간다.
따라서 관리자가 권한 위임을 했다고 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은 막상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쳐다보지 않고 신문만 보는 감독과 다를 바 없으며, 관리자가 실무자의 일들을 살펴본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는 것은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경기를 진행하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1
5. 숭례문 화재에 대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나?
화재를 진압 못 한 것은 전적으로 소방방재청의 책임이다. 문화재라서 소방작업이 소극적이었다는 것은 변명일 뿐 일고의 가치도 없다.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 2006년 5월 화성 서장대 화재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문화재 소방대책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보 1호를 담당하는 소방서가 재난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없었다는 것은 무지인지 무관심인지 이해가 안 된다.
관리를 못 한 중구청에 2차적인 책임이 있다. 예산 타령을 하기 전에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하게 돼 있으면 제대로 했어야 한다. 하물며 국보 1호를 뒷동산 약수터만도 못하게 관리를 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3차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다. 위탁관리를 맡겼다고 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관리 감독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다. 경기가 벌어지는 운동장에서 감독이 신문만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뒷북치지 말자. 예산과 인력 타령만 하지 말자. 예산과 인력이 충분하면 관계자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충분한 시간, 예산,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네 탓 내 탓을 할 것 없다. 잘못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울수록 크지만 책임은 현장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무거워지는 법이다.
우리도 방관자였다. 대형 사건 사고가 나면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 흐지부지했었던 방관자였다. 아무리 업무분장이 잘돼 있어도 방관자는 발생한다. 방관자 효과를 없애고 최소화시킬 최고 책임은 (주)대한민국 CEO에게 있고, 우리는 싫든 좋든 (주)대한민국의 주주다. (주)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에게 제일 큰 책임이 있다.
6. 에필로그
우리는 무너진 백화점, 무너진 다리, 불타는 지하철 잔해를 치우기도 전에 쉽게 잊는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뼈를 깎는 고통으로 눈물을 삼키며 잊지 말자고 대대로 남겨놓자.
불타버린 숭례문은 앞으로 600년을 고대로 보존하자. 저 참혹한 숭례문을 보며 우리는 두고두고 조상과 후손에게 반성하자.
숭례문은 국보 1호다.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서울대로 한복판에 서서 대한민국의 문화를 대표한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눈길이 스쳐가고 코앞에 경찰서와 소방서가 있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공통영역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 숭례문에 불이나 600년을 이어오던 자존심이 밤사이에 홀라당 타버렸다. 왜 그랬을까?
문화재청은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고, 관리는 서울 중구청이 맡는다. 그나마 밤에는 무상으로 경비업체에서 관리한다. 문화재청은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으니 관리감독을 등한시했을 것이고, 지자체는 숭례문 임자는 국가이고, 예산이나 인력도 없으니 형식상 관리하는 척했을 것이다. 경비업체는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생색내기 위한 무료봉사를 하고 있으니 짜장면 배달하듯이 번개처럼 달려갔을 리 만무하다.
서민 주택에 화재가 나서 출동한 소방차는 들입다 물만 쏴대며 불을 끄면 그만이지만 국보 1호에 불이 났으니 진화하더라도 파손이 되면 뒷감당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문화재청 눈치를 살폈을 게 뻔하다. 또 전통건물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을 테고. 그러는 사이 숭례문은 600년 가치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국가 문화재 관리에 대한 업무분장은 법적으로 잘돼 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2. 업무분장(work scope)은 왜 필요하지?
업무분장은 조직의 형태나 크기에 관계없이 존재한다. 관습적이든 문서화돼 있던 서로 고유한 업무 영역을 가지고 있다. 업무분장이 필요한 경우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잘 돌아가는 조직은 업무분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업무분장 없이도 서로 내 일처럼 챙겨서 업무의 공백이 없다. 다만, 과다한 집중으로 업무 중복이 생기고 그에 따른 비효율적인 손실을 예방하고자 work scope를 나눈다. 구성원들은 어떻게 업무의 범위를 정하든 불만이 없다.
두 번째는 조직에 뭔가 문제가 있고 조정과 협조가 안 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칼로 자른 듯이 업무의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전자는 굳이 문서화하지 않아도 묵시적 동의하에 원활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후자는 육법전서 같은 work scope를 만들어 놔도 항상 불만이 있고 빠져나갈 사각지대를 찾는다. 이럴 때는 두꺼운 업무분장이 있어도 케이스별로 다시 scope를 만든다.
3. 방관자 효과는 꼭 생긴다
업무분장을 아무리 잘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공통부문은 생기게 마련이다. 일이라는 게 만들어 놓은 업무분장표에 딱 맞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이 발생하니까 work scope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직에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work scope를 나누면 공통부분에 있는 일은 서로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겠지, 다른 부서에서 하겠지 하며 책임이 분산된다. 그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책임지고 하지만, 나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등한시하고 무관심해진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숭례문은 모두의 업무 영역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각지대로 만들었다. 누구나 해야 할 공통부분이 오히려 더 많은 방관자를 만들었다.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38명이나 지켜보는 가운데 무참히 살해된 것과 같다.
4. 예방책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work scope를 만든다 하더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방관자 효과를 방지하려면 공통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특별한 부분(critical work)은 특히 더 수평적 공통부분이 없거나 최소화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이 일은 네가 책임자야'라고 하는 것이 좋다.
공통부분에 대한 일을 처리할 때 상호 간에 충돌되는 문제가 대두되었을 경우에는 '내 상급자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 쉽게 해결이 된다. 서로 충돌되는 부분은 직책이 높을수록 본인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말단 사원끼리 아웅다웅하는 일도 다 과장의 일이고, 부장과 부장이 티격태격하는 일은 상무, 전무 혹은 사장의 일이다.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제 밥그릇부터 챙기다가 솥단지를 뒤 업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관리감독 기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의 권한 위임은 스포츠에서 감독과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는 선수에게 믿고 맡기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전략을 짤뿐만 아니라 각 선수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면서 경기를 이끌어 간다.
따라서 관리자가 권한 위임을 했다고 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은 막상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쳐다보지 않고 신문만 보는 감독과 다를 바 없으며, 관리자가 실무자의 일들을 살펴본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는 것은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경기를 진행하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1
5. 숭례문 화재에 대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나?
화재를 진압 못 한 것은 전적으로 소방방재청의 책임이다. 문화재라서 소방작업이 소극적이었다는 것은 변명일 뿐 일고의 가치도 없다.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 2006년 5월 화성 서장대 화재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문화재 소방대책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보 1호를 담당하는 소방서가 재난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없었다는 것은 무지인지 무관심인지 이해가 안 된다.
관리를 못 한 중구청에 2차적인 책임이 있다. 예산 타령을 하기 전에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하게 돼 있으면 제대로 했어야 한다. 하물며 국보 1호를 뒷동산 약수터만도 못하게 관리를 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3차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다. 위탁관리를 맡겼다고 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관리 감독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다. 경기가 벌어지는 운동장에서 감독이 신문만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뒷북치지 말자. 예산과 인력 타령만 하지 말자. 예산과 인력이 충분하면 관계자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충분한 시간, 예산,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네 탓 내 탓을 할 것 없다. 잘못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울수록 크지만 책임은 현장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무거워지는 법이다.
우리도 방관자였다. 대형 사건 사고가 나면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 흐지부지했었던 방관자였다. 아무리 업무분장이 잘돼 있어도 방관자는 발생한다. 방관자 효과를 없애고 최소화시킬 최고 책임은 (주)대한민국 CEO에게 있고, 우리는 싫든 좋든 (주)대한민국의 주주다. (주)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에게 제일 큰 책임이 있다.
6. 에필로그
우리는 무너진 백화점, 무너진 다리, 불타는 지하철 잔해를 치우기도 전에 쉽게 잊는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뼈를 깎는 고통으로 눈물을 삼키며 잊지 말자고 대대로 남겨놓자.
불타버린 숭례문은 앞으로 600년을 고대로 보존하자. 저 참혹한 숭례문을 보며 우리는 두고두고 조상과 후손에게 반성하자.
-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109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