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마니아를 만든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
1. 마니아(mania)와 정치인
마니아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광기(狂氣) ②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일, 또는 그러한 사람을 뜻한다. 골프 마니아, 클래식 마니아, 축구 마니아 등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열중하는 사람을 말한다.
마니아(mania)란 말의 어원은 플라톤의 철학적 개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한(有限)하여 당연히 죽을 존재인 인간에게 일상과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여 영원한 것(가치, 이데아)과 해후할 초월적인 힘을 주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어떠한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것을 의미하며, 혹자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마니아의 광적인 몰입과 애정은 사실 다른 특수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대상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개성과 다양성으로 진보하는 우리 시대에 정치인이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자조적인 한탄과 그것을 증명하려는 그들의 짓거리는 불특정 다수를 손가락질하는 마니아로 만들기 충분한 게 사실이다.
하물며 국가 권력의 최고점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제 발로 걸어 나오질 못했거나 퇴임 후 순탄치 못한 말년을 답습했다. 퇴임하는 시점에 인기도는 최저점에 머물렀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병적이거나 반사회적 상태가 아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들을 마니아로 만든다는 것은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이 나길 바라는 게 더 빠를 일이다.
2. 가카(閣下)를 가카(脚下)로 만든 대통령
이십 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은 고작 여덟이었다. 그들은 재임 중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를 누렸다. 스스로 하늘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하늘을 우러러보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권위를 자유의지로 땅에 내려놓을 리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할 거로 생각했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마치며 만신창이가 된 노무현 후보는 상대 후보를 57만여 표(2.5%) 차로 따돌리며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노무현은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와 걸어서 들어갔다. 불가항력적인 힘이 끌어내린 것도 아닌데 자처해서 땅 위를 걸어갔다. 국민통합을 위해 권위주의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 후로 머리에 빨간 띠를 동여매거나 삭발한 시위대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대통령을 만나 따져야 한다고 했다. 모든 문제가 다 놈현때문이라고 했다. 놈현스럽다는 말도 생겨났다. 권위주의만 내려놓아야 했는데 권위마저 무너져 버렸다. 노무현은 무너진 권위를 부여잡고 도로 쌓으려고 하지 않고 대통령 가카(閣下)를 대통령 가카(脚下)로 만들었다.
3. 노빠와 마니아는 다르다
역대 대통령 중 박통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추진력 있게 국가역량을 집중하여 보릿고개를 없애고 새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제는 전통이 차라리 나았다는 이들도 있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경제수석에게 힘을 실어 주고 성장, 물가, 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인기가 있었나요? 그렇게 그리우면 그 시대에 다시 사시겠어요?
대답은 아니오다. 그것은 하이라이트만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 중에 나쁜 기억은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는 현실 도피성 가정법이다. 좋은 기억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정권을 연명하며 유지하던 받침돌이었을 뿐이다. 인기는커녕 민심의 이탈은 시간이 흐를수록 엑소더스를 방불케 했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다르다. 5년 전, 대선 끝나고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놈현 찍고 바로 이민 간 사람이라는 유머가 있었다. 기대가 높으면 추락하는 실망도 큰 법. 참여정부 출범 때 높은 기대를 했던 지지자들 중에 상당수가 이탈했다. 역대 정권은 이탈의 끝에 오는 권력자의 왕따를 경험했지만 노무현은 그럴수록 잔여 지지층이 더욱 결집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 주며 노무현 마니아로 변해갔다.
일부에서는 노빠라고도 하지만 노빠와 마니아층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을 구분하는 잣대는 그들에게서 건설적 비판을 엿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건설적 비판이라 함은 비판은 하되 거기서 나온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다. 불만을 얘기하고 상대방을 시기하고 일방적인 비판을 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며 누구나 할 수 있다. 대꾸라도 할라치면 "그건 모르겠고......" "됐거덩" 하는 노빠에게서 대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 노무현 마니아는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대안을 내놓는다. 노빠가 가신과 같다면 노무현 마니아는 충신이라 할 것이다.
4. 마니아를 유지하기 위한 숙제
노무현은 마니아를 만든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열렬한 지지자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마니아는 변심한 지지자보다 더 무섭다. 변심한 지지자는 미련 없이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마니아는 실망 이상의 원망을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열광하던 황우석 마니아들은 그의 거짓으로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며 돌을 던졌다. 잔여 마니아는 애정이 광적인 몰입으로 이어져 결국 황우석빠가 되고 말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지미 카터는 퇴임 후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하고 있다. 2002년 노벨 평화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니아를 만든 대통령 노무현이 황우석의 길을 가야 할지 지미 카터의 길을 걸어야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5. 에필로그
나는 노무현을 지지하지도 않았지만 설레발 떨며 초반에 기댓값을 높게 가졌다가 급실망한 사람이다. 재임 시절의 경제지표나 언론에 대한 시각 등 그의 정치관과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한 막말이라는 것은 같은 땅 위에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카(脚下)가 돼서 다시 각하(閣下)로 되돌려 놓지 못하게 만든 것은 최고의 역작이자 걸작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세월이 지나면 하이라이트로 기억되는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단순한 순차적 상대평가가 아닌 가장 훌륭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이것이 잃어버린 십 년이라고 말하는 대중이 기억하고 싶은 미래다.
마니아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광기(狂氣) ②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일, 또는 그러한 사람을 뜻한다. 골프 마니아, 클래식 마니아, 축구 마니아 등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열중하는 사람을 말한다.
마니아(mania)란 말의 어원은 플라톤의 철학적 개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한(有限)하여 당연히 죽을 존재인 인간에게 일상과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여 영원한 것(가치, 이데아)과 해후할 초월적인 힘을 주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어떠한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것을 의미하며, 혹자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마니아의 광적인 몰입과 애정은 사실 다른 특수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대상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개성과 다양성으로 진보하는 우리 시대에 정치인이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자조적인 한탄과 그것을 증명하려는 그들의 짓거리는 불특정 다수를 손가락질하는 마니아로 만들기 충분한 게 사실이다.
하물며 국가 권력의 최고점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제 발로 걸어 나오질 못했거나 퇴임 후 순탄치 못한 말년을 답습했다. 퇴임하는 시점에 인기도는 최저점에 머물렀었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병적이거나 반사회적 상태가 아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들을 마니아로 만든다는 것은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이 나길 바라는 게 더 빠를 일이다.
2. 가카(閣下)를 가카(脚下)로 만든 대통령
이십 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은 고작 여덟이었다. 그들은 재임 중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를 누렸다. 스스로 하늘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하늘을 우러러보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권위를 자유의지로 땅에 내려놓을 리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할 거로 생각했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마치며 만신창이가 된 노무현 후보는 상대 후보를 57만여 표(2.5%) 차로 따돌리며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노무현은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와 걸어서 들어갔다. 불가항력적인 힘이 끌어내린 것도 아닌데 자처해서 땅 위를 걸어갔다. 국민통합을 위해 권위주의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 후로 머리에 빨간 띠를 동여매거나 삭발한 시위대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대통령을 만나 따져야 한다고 했다. 모든 문제가 다 놈현때문이라고 했다. 놈현스럽다는 말도 생겨났다. 권위주의만 내려놓아야 했는데 권위마저 무너져 버렸다. 노무현은 무너진 권위를 부여잡고 도로 쌓으려고 하지 않고 대통령 가카(閣下)를 대통령 가카(脚下)로 만들었다.
3. 노빠와 마니아는 다르다
역대 대통령 중 박통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추진력 있게 국가역량을 집중하여 보릿고개를 없애고 새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제는 전통이 차라리 나았다는 이들도 있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경제수석에게 힘을 실어 주고 성장, 물가, 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인기가 있었나요? 그렇게 그리우면 그 시대에 다시 사시겠어요?
대답은 아니오다. 그것은 하이라이트만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 중에 나쁜 기억은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는 현실 도피성 가정법이다. 좋은 기억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정권을 연명하며 유지하던 받침돌이었을 뿐이다. 인기는커녕 민심의 이탈은 시간이 흐를수록 엑소더스를 방불케 했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다르다. 5년 전, 대선 끝나고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놈현 찍고 바로 이민 간 사람이라는 유머가 있었다. 기대가 높으면 추락하는 실망도 큰 법. 참여정부 출범 때 높은 기대를 했던 지지자들 중에 상당수가 이탈했다. 역대 정권은 이탈의 끝에 오는 권력자의 왕따를 경험했지만 노무현은 그럴수록 잔여 지지층이 더욱 결집하고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 주며 노무현 마니아로 변해갔다.
일부에서는 노빠라고도 하지만 노빠와 마니아층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을 구분하는 잣대는 그들에게서 건설적 비판을 엿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건설적 비판이라 함은 비판은 하되 거기서 나온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다. 불만을 얘기하고 상대방을 시기하고 일방적인 비판을 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며 누구나 할 수 있다. 대꾸라도 할라치면 "그건 모르겠고......" "됐거덩" 하는 노빠에게서 대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 노무현 마니아는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대안을 내놓는다. 노빠가 가신과 같다면 노무현 마니아는 충신이라 할 것이다.
4. 마니아를 유지하기 위한 숙제
노무현은 마니아를 만든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열렬한 지지자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마니아는 변심한 지지자보다 더 무섭다. 변심한 지지자는 미련 없이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마니아는 실망 이상의 원망을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열광하던 황우석 마니아들은 그의 거짓으로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며 돌을 던졌다. 잔여 마니아는 애정이 광적인 몰입으로 이어져 결국 황우석빠가 되고 말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지미 카터는 퇴임 후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하고 있다. 2002년 노벨 평화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니아를 만든 대통령 노무현이 황우석의 길을 가야 할지 지미 카터의 길을 걸어야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5. 에필로그
나는 노무현을 지지하지도 않았지만 설레발 떨며 초반에 기댓값을 높게 가졌다가 급실망한 사람이다. 재임 시절의 경제지표나 언론에 대한 시각 등 그의 정치관과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한 막말이라는 것은 같은 땅 위에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카(脚下)가 돼서 다시 각하(閣下)로 되돌려 놓지 못하게 만든 것은 최고의 역작이자 걸작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세월이 지나면 하이라이트로 기억되는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단순한 순차적 상대평가가 아닌 가장 훌륭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이것이 잃어버린 십 년이라고 말하는 대중이 기억하고 싶은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