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장경

소설 대장경
  • 온통 화염으로 휩싸인 판전에서는 그칠 줄 모르고 석가모니불을 외우는 합창소리가 낭랑하게 퍼져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도 거칠어지는 불길에 따라 차츰 윤기를 잃고 탄력을 잃어가며 잦아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수한 불티와 폭음을 남기며 지붕이 내려앉는 것으로 그 소리도 흔적을 감추어 버렸다. (33)
  • 생각해 봐라, 우리 같은 천한 목숨이 지어 놓은 절에 대자대비 부처님을 모시게 되고 그 앞에 권세 높고 돈 많은 양반 정승들부터 시작해서 구구각색 사람들이 다 발 벗고 올라 머리를 숙인다. 어디 그뿐이냐. 제 아무리 세도가 당당하고 지체 높은 사람도 죽으면 다 썩어 흙이 되고 말지만 한번 지어 놓은 절은 수수백년을 간다. 알아듣겠느냐, 근필아. 필히 큰 목수가 돼야 한다. (60)
  • "대장경 판각 불사를 윤허하노라" (86)
  • 장경 판각을 하는데는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그 글씨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각기 다른 글씨를 통일시켜야 하는 훈련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 기간이 평균 삼 년은 걸리게 됩니다. 그 다음은 각수의 문제입니다. (...) 이들을 숙달시키는 데도 대략 삼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끝으로 판목 제작 과정을 보시요. (...) 그 나무도 벌채를 해서 바로 판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에 삼 년여를 담가 진을 뺌과 동시에 강도를 강하게 만듭니다. 그걸 건져내 그늘에서 건조시킨 다음 판목을 만듭니다. 이는 판목이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다 만들어진 판목은 다시 소금물에 넣어 끓여 냅니다. 이것은 자체 부패를 막고 좀 같은 것들이 슬지 못하게 함입니다. (105)
  • 통나무가 건조되기까지는 십 개월 정도가 걸렸다. 햇볕에 직접 건조를 시켰더라면 한 달 남짓이면 충분할 것이었다. (158)
  • 이것으로 팔만일천일백삼십칠 장의 경판본인 십육만이천이백칠십사 장의 글씨를 완성해낸 것이다. 한 판 양면을 육백오십 자로만 치더라도 오백이십칠만구백다섯 자를 쓴 것이다. 그러니까 백여 명의 필생들은 삼 년에 걸쳐 제각기 오만 자 이상을 쓴 셈이었다. (237)

소설 대장경/조정래/민족과문학사 19910610 275쪽 3,800원

숭례문이 불타는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 소설이다. 나무를 삼 년간 바닷물에 담갔다 그늘에서 건조시키고 다시 소금물에 끓여야 비로소 대장경에 쓸 판목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벌채할 나무라도 있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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