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 갈채를

국립 도서관에 들렀다 강남 터미널 쪽으로 걸어 내려오는 길. 강남성모병원 앞 네거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경찰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88 서울 올림픽 마라톤 10㎞ checkpoint. 네거리에 잠실 경기장을 출발한 마라톤 경기가 10㎞ 지점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마라톤 경기가 올림픽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열리는 경기라면 폐막식 날이었나 보다. 그 현장에 나도 함께 있기로 했다.

잘 보이는 네거리 모퉁이에 자리를 잡은 지 채 몇 분도 안 돼 경찰이 자리를 옮기란다. 기껏 자리 잡고 있는데 옮기라는 이유도 모르며 모퉁이에서 조금 물러났다. 경찰은 우리가 자리를 옮기자 일장기를 든 일본 관광객들을 그 자리로 안내해 왔다. 뭐 저런 쌍코랑 말코랑 같은 경찰이 있나 하면서도 모두가 참는다. 이국에서 구경 온 관광객에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기로 묵시적 약속을 한다. 그곳에 있던 내게는 텃세를 부리지 않고 남을 배려한 최초의 글로벌 집단행동이었다.

멀리서 일등으로 달려오는 선수가 보인다. 네거리에 있던 모두가 열렬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선두그룹에 이어 중간그룹과 후미그룹도 지나간다. 선수들이 다 지나갔으려니 하던 찰나. 커다란 함성과 일등보다 더 큰 환호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제일 마지막 선수, 일명 꼴찌가 나타난 것이었다. 일련의 마라톤 선수들이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 위용은 꼴찌만 못했다.

꼴찌 뒤로는 지원차량 한 무더기가 꼴찌의 속도에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꼴찌 선수가 그 모두를 이끌고 달리는 것 같다. 장관이다. 더군다나 꼴찌 선수는 손을 흔들며 답례를 하는 여유를 부리며 지나간다.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그에게 우리는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꼴찌에게 갈채를.

10㎞ 지점을 마지막으로 지나간 그 선수가 꼴찌로 완주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앞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지나가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현장에서 지켜본 올림픽 경기의 전부다. 매스컴은 금메달을 화려하게 조명하고 세상은 일등만을 기억할 때 꼴찌에게도 갈채를 보냈던 그 가을이 생각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