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와 수준의 관계

1.
일본으로 친선경기 원정을 간 한국 야구팀은 생전 처음 보는 투구에 깜짝 놀랐다. 별별 공을 다 봤지만 일본 투수가 던지는 공은 보도 듣지도 못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마구(魔球)라고 밖에는 달리 부를 말이 없었다. 크게 와인드업 한 투수는 공을 땅속으로 던졌다. 땅속을 파고 오던 공은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튀어나와 포수 글러브로 쏙 들어갔다. 타석에 선 한국 선수들은 공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멍 때리다 그대로 삼진을 당했다. 한국 감독은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이 굴러오든 기어오든 스트라이크존만 통과하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타자들은 9회가 끝날 때까지 멍 때리다 모두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수비를 선방해서 0:0으로 무승부를 했다는 것이다.

국내로 돌아온 한국 감독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달에 일본팀이 원정을 왔을 때도 선방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홈경기에서 일본에 졌을 때 쏟아질 비난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두더지 공을 막을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좀처럼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감독은 손뼉을 딱 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일본팀과의 홈경기가 벌어지는 날. 1회 말 한국팀의 공격. 예상대로 두더지 공을 던지는 일본 투수가 선발로 나왔다. 와인드업하고 공을 힘차게 땅속으로 던졌다. 순간. 일본팀은 모두 허걱 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땅속으로 들어가 굴을 파야 할 공이 그대로 바닥에 꽂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경기 며칠 전. 투수석에서 포수석까지 땅을 파서 공구리를 쳐버리고 살짝 흙으로 덮어놨었던 것이다. 그날 한국은 대승을 거뒀다.

2.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였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라운드에 공구리를 친 것이 홈경기의 이점이라면 텃세가 맞을지 싶다.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 양궁장. 경기장 생김새부터 중국 응원 텃세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여자 단식 결승에 오른 한국의 박성현 선수와 중국의 장주안주안 선수. 경기 결과는 중국의 금메달, 아쉬운 박성현의 은메달. 중국 관중은 호각을 불고 야유를 했지만 경기 후 박성현 선수는 남을 탓하지 않았다. 아울러 양궁장에 있던 한국 관중은 맞불 응원을 한 것이 아니라 매너를 지켰다.

3.
야구장에 공구리를 친 것이나 양궁장에서 호각을 분 것은 텃세다. 텃세는 급조하기 쉽고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당위성을 얻으려 하지만, 그 순간 스스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고 매너를 지키는 수준이 되면 텃세까지도 용서하며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텃세와 수준은 언제나 반비례한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으로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스포츠에서 텃세는 메달의 색깔을 바꾸지만 일상에서의 텃세는 우리 미래의 색깔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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