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에 대한 추억

Taekwondo
나는 태권도 까만띠를 매 봤답니다. 물론 야매지만요. 넌 체구가 쪼매 하니까 운동을 해라. 촌에서 도회지로 나오자마자 반강제적으로 다닌 곳이 태권도 도장이었습니다.

도장 가는 길이 무서웠답니다. 다니는 태권도장은 오도관이었는데 그 도장을 가는 길에 무덕관이 있었지요. 어린 마음에도 파가 다르다는 걸 알고 무덕관 앞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빙 둘러 도장에 가곤 했답니다.

그때가 열 살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다니다 보니 빨간띠를 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두려웠던 시간은 자유대련 시간이었습니다. 비슷한 체구나 급수를 따져 대련을 하게 했지만 내게는 동성의 맞상대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꼭 맞붙는 상대가 쪼매 키가 컸던 상급생 누나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그 누나는 자유대련하려고 나와 붙을 시간이 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누님은 항상 나와 맞붙을 줄 알고 그 시간만 되면 자신만만하게 나와서 인사를 했답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깨지지는 않았지만 그 누님의 눈빛을 보면 절반은 깨갱 하면서 주눅이 들곤 했답니다. 태권도는 품새도 중요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상대방과의 대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라. 그렇게 다니다 보니 학교에서 내가 제일 급수가 높더라고요. 그래서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제일 높은 곳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게 됐답니다. 그 시절에는 다 모여서 태권도를 하는 시간이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도교사 선생님은 나를 비롯해 태권도를 배우던 아그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시더군요.
- 이번 운동회 때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열심히 하자.
거부권도 없던 철없는 시절-부모님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이라 모두가 어리둥절할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죠.
- 음. 태권도 격파 시범을 하기로 했어.
그렇다고 별도로 격파 연습을 한 건 아닙니다.

만국기가 걸려 있는 운동장에서 태권도 시범을 하는 시간. 그래도 내가 급수가 가장 높으니 검정띠를 매라고 하더군요. 본의 아니게 까만띠를 매고 격파 시범을 하게 됐답니다. 김밥을 싸들고 온 어머니 할머니들은 숨죽이고 지켜보았습니다.

"이 야얏."
함성과 함께 일렬로 서 있던 우리는 앞에 놓인 기왓장 열 장을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정권으로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내려쳤습니다. 기왓장을 힘찬 기합과 함께 내려쳤는데 달랑 네 장만 깨졌습니다. 에구 창피. 하지만 한 줄로 서서 마치 슬로비디오로 내려치는 장면 같아서 뽀롱나지는 않았습니다.

시범이 끝나고 거두어 온 기왓장을 만지며 왜 이리 안 깨졌지 하며 두 손으로 움켜쥐자마자 후드득 부서지더군요. 소금물에 절인 기왓장이라고 하더이다. 무지 쪽팔렸습니다. 그때가 4학년쯤 됐을지 싶습니다. 그 후로 어디 가서 태권도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엊그제부터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권도를 중계방송하더군요. 참 재미없습디다. 겨루기로 승부를 내는 것 같은데 규칙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두 선수가 2분 3회전인가를 발만 동동 구르다 끝나더군요. 점수를 땄는지 모르지만 발차기 한 번 하고는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더군요. 오죽하면 누리꾼이 스카이콩콩 같다고 하겠어요.

뭐 들리는 말로는 채점을 위해 전자장비를 개발했는데 협회 내부의 이권 싸움으로 채택이 안 됐다는 소문이 들리는 걸 봐서는 올림픽에서 퇴출이 돼도 할 말은 없을 것 같더군요.

혹자는 운동의 정신을 봐야 한다며 태권도가 두 발만 콩콩 구르는 것도 작전이라며 유도는 도복 끝을 붙잡으려고 하다 끝나는 운동이라고 악평을 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태권도에서 겨루기는 품새를 끝낸 고수들이 모든 걸 걸고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두 발로 통통 튀기만 하다 관중도 모르는 포인트를 얻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나와 겨루기 하던 그 누님의 눈빛이나 투지가 두 발이나 두 손에서 나오는 걸 잘 활용해서 제삼자가 봐도 흥미 있는 종목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순간적인 포인트 공격보다는 5분 동안 겨루기를 해서 판정을 하고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추가 5분 동안 겨루기를 지속하면 어떨까 싶네요. 판정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켜본 관중이 잘 알 테니까요. 적어도 핸드볼처럼 영상판독 하자는 사태까지 가지는 않겠지요.

아. 태권도 겨루기를 잘하던 고왔던 그 누님은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를 보면서 내가 식겁할 정도로 발차기를 잘했던 예쁜 누나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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