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남자는

Lonely man
Lonely man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답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 합니다.

그 말을 곱씹어보면
세상에 백지상태로 태어난 존재의 출발을 알리며 울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 백지를 채우려고 싸돌아다니다
존재의 출발점이 사라질 때 인연의 끝을 부여잡고 울며,
역사적으로 나라가 망하면 충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니
마지막 울음에는 존재를 마감하는 실낱같은 미련도 섞여 있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범부에도 못 미치는 소인배인지라
첫울음은 선택할 수 없어 기억나지 않는 절대 울음이었고
나라가 망해서 우는 경우는 살아생전에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 날 확률보다 적어 보이긴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이 붙는다면 그때 가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선택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울어야 하는 거라지만
정작 세월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점점 울컥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패스트푸드를 먹는 세상이 오면서 오히려 가슴속 시장기는 커졌고
Y2K 버그가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지나가며 신세기를 맞았지만
주책없이 그 버그가 내 안에 자리를 잡아 가끔 에러를 일으키다가
급기야 중대한 오류라도 일어나면 눈물이 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무인도에 혼자 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녀서
그렇게 우는 게 눈치가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울다 나오면
변비 환자인 줄 알고 학문에 너무 힘쓰지 말라고 합니다.

봄 ○○는 쇠젓가락을 녹이고 가을 ○○는 요강을 뚫는다는 속담처럼
대대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속담이 틀리지 않다면 가을 남자들은 기운이 왕성해야 하는데
요강은 고사하고 그 조차 들 힘이 없는 어깨가 점점 처지며 울고 싶습니다.

정치 뉴스야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하듯 안줏거리로 씹으면 되지만
더는 졸라맬 허리도 없는데 뻑하면 고통만 뿜빠이 하자는
경제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면 속에서 눈물이 펑펑 흐릅니다.

때로는 남자도 소리 내어 울고 싶어 집니다.
게다가 가을비라도 내리면 왕년의 추억까지 덤으로 얹힌답니다.
올가을은 고독한 남자를 독한 남자로 만들어 슬퍼집니다.
올가을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목놓아 꺼이꺼이 울고 싶어 집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지금 눈치 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가을 남자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행여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를 자작하며 허공을 바라보는 남자를 보시면
뼈 없는 닭발이라도 건네는 붉은 악마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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