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

싸이 일촌이며 한때 동료였던 예쁜 아줌마(?)가 물었습니다. 떡국 더 먹은 댁은 나이를 먹는 기분이 어떠냐고. 대답했습니다. 나이 더 처먹은 것도 억울한데 공짜로 알려줄 수 없다고요.

대단한 노하우라도 움켜쥔 것처럼 답글을 달았지만 사실은 딱히 둘러댈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스무 살까지는 바삐 어른이 되고 싶었고, 서른 살이 되면서 어릴 적 꿈은 가물가물 해졌습니다. 딱 마흔 살이 되는 날 별책부록이 되는 기분을 느끼며 기왕이면 괜찮은 부록이 되고 싶었습니다.

앞만 보라며 눈가리개를 한 것도 아닌데 마흔이라는 나이는 그렇게 왔습니다. 세월은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고 하지만 마흔이 넘으면 일부러 느끼고 싶지 않아 서른한 살에서 멈췄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급기야 84년생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갑자기 서면 어쩌나 가속도 하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몸뚱어리가 튀어나가고, 차선을 변경하면 엉뚱한 길로 들어설 것 같아 핸들도 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감속도 맘대로 못합니다.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이 욕을 바가지로 하니까요. 라이방 쓰고 뽀대나게 달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요 모양 요 꼴로 달리는 데 신기한 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앞만 줄창 보다가 옆 차선도 보이기 시작하고, 스쳐가는 풍경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는 백미러도 볼 줄 아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그럴수록 내 모습도 비춘다는 걸 알았습니다.

삐까번쩍한 스포츠카를 타고 앞서 달리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는 "세월이 갈수록 가족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것"1이 미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발효가 되면 누군가에게 이롭지만 썩어가면 주변에 고약한 냄새만 풍깁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발효가 되는지 부패가 되는지 스스로 냄새를 맡는 아량을 가지게 합니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발효되는지 썩어가는지 외면하고 모른 체하며 무감각하게 살았습니다. 이제는 똥개도 외면하는 썩은 생선 대가리보다는 맛을 아는 이들이 즐겨 찾는 삭힌 홍어가 되고 싶습니다.


덧. 작년부터 권력은 과메기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시방 불현듯 홍탁삼합이 땡깁니다. 처음 입덧하는 아낙처럼. 주책맞게 홑몸이 아닌가 봅니다. 회충약 먹어야겠습니다.


  1. 공병호,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18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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