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이 비탈을 오르다
근래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은 욕을 한 적은 없다. 600 고지만 오르다 갑자기 1000 고지를 오르려고 하니 욕이 절로 나온다. 치악산을 찾은 것도 근 십여 년 만이고 더군다나 향로봉과 남대봉 코스는 난생처음 가는 길이라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다. 북한산은 산성문까지 헐떡거리며 오르다 산성을 따라 걸으면 숨이 차지 않아 안성맞춤인데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계속되는 비탈길은 나로 하여금 욕을 하게 만든다. 열 걸음을 오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랄 맞은 비탈길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한다.
강원도는 집 밖에서 똥을 눌 때 발을 가지런히 하고 쭈그리지 못한다. 발을 가지런히 하고 엉덩이를 까면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어슷하게 발을 디디고 발에 힘을 잔뜩 주며 앉아야 안심하고 볼일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강원도 출신을 비탈이라고 한다. 비탈 출신이 고향에 있는 산을 오르며 지랄 맞다고 하니 누가 들으면 도회지 출신인 줄 알겠다. 그렇게 쉼 없이 욕을 해대며 해발 1042미터라고 적혀 있는 향로봉에 도착했다.
향로봉이라고 해봐야 비석이 따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펑퍼짐한 서너 평 공간뿐이다. 원주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라며 널찍한 알림판을 비스듬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알림판은 시내 전경을 비교하며 보라고 세워놨지만 실제 그 자리에 서면 서장훈 같은 키다리가 아니면 알림판이 시선을 가려 전경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애써 세워놨지만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서서 같이 구경하던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며 알림판 얘기를 했더니 공무원들 하는 일이 다 그렇다는 듯이 껄껄 웃으시고는 하산을 한다며 내가 온 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워매 부럽다.
향로봉에서 남대봉으로 가는 능선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김밥이나 컵라면이 있어 배낭도 가볍고 자연보호를 저절로 하는 것 같다. 예전엔 당일치기 산행인데도 버너를 가지고 다니며 정상에서 밥을 지어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 삼겹살에 막걸리며 소주를 마신 기억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산에 오르는 예의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김밥 두 줄을 먹으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꾹 참는다.
한참 걷다 보니 널찍한 헬기장이 나온다. 색시 가수-요즘은 섹시하고는 거리가 먼 모습이 자주 보이는지라 이렇게 부른다- 이효리가 자기 이름의 약자가 산정상마다 있다고 우기는 H자가 쓰여 있다. 조금 내려가니 상원사와 영원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남대봉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내리막길인가. 산악회에서 온듯한 분들이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일요일인데도 이정표를 고쳐 세우고 있는 공원 관리공단 여자 직원분이 있어 남대봉이 어디냐고 물으니 조금 전 지나왔던 헬기장이라고 한다. 서울 근교에 있는 산-특히 청계산-에는 눈에 번쩍 띄는 커다란 비석이 있지만 남대봉은 이정표에만 쓰여 있어서 그냥 지나쳤나 보다. 해발 1182미터로 최근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올랐는데 인증샷없이 지나친 게 무척 아쉽다.
영원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도 무척 험하다. 발 디딜 곳만 찾느라 코앞만 보며 내려오니 고개가 아프다. 오르막길은 가슴이 터지고 뇌에 산소가 공급이 안 되는 느낌(?)이 들지만 내리막길은 고개가 아파 쉬어야만 했다. 또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가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고개 아플 일이 없을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아직도 한겨울 같은 서늘함이 남아있다. 고양이 세수를 하니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얼마를 걸어 내려오니 야영장도 있다. 여름 날씨라고는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데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펜션이나 민박을 하지 않고 굳이 야영을 택한 것이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연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여 다시 한번 산에 대한 예의가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관리사무소를 지나서 적당한 곳에 앉아 담배 하나를 피워 물었다. 굴러 내려갈 염려가 없으니 이제 다 내려왔나 보다. 버스 타는 곳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한참을 가야 한단다. 얼추 반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 같다. 비탈길이 아니라 힘은 적게 들지만 비탈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평지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터벅터벅 걸으며 생각해보니 비탈길도 치악산도 그대로지만 변한 건 저질 체력이 된 나뿐이다. 홀로 변한 내가 변함없는 비탈길을 오르며 욕을 해댔다. 평지만 걸었던 비탈 출신은 잠시 비탈이 고향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신작로에서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그림자 하나가 걷고 있다. 뒤돌아본 비탈진 산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강원도는 집 밖에서 똥을 눌 때 발을 가지런히 하고 쭈그리지 못한다. 발을 가지런히 하고 엉덩이를 까면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어슷하게 발을 디디고 발에 힘을 잔뜩 주며 앉아야 안심하고 볼일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강원도 출신을 비탈이라고 한다. 비탈 출신이 고향에 있는 산을 오르며 지랄 맞다고 하니 누가 들으면 도회지 출신인 줄 알겠다. 그렇게 쉼 없이 욕을 해대며 해발 1042미터라고 적혀 있는 향로봉에 도착했다.
향로봉이라고 해봐야 비석이 따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펑퍼짐한 서너 평 공간뿐이다. 원주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라며 널찍한 알림판을 비스듬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알림판은 시내 전경을 비교하며 보라고 세워놨지만 실제 그 자리에 서면 서장훈 같은 키다리가 아니면 알림판이 시선을 가려 전경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애써 세워놨지만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서서 같이 구경하던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며 알림판 얘기를 했더니 공무원들 하는 일이 다 그렇다는 듯이 껄껄 웃으시고는 하산을 한다며 내가 온 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워매 부럽다.
향로봉에서 남대봉으로 가는 능선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김밥이나 컵라면이 있어 배낭도 가볍고 자연보호를 저절로 하는 것 같다. 예전엔 당일치기 산행인데도 버너를 가지고 다니며 정상에서 밥을 지어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 삼겹살에 막걸리며 소주를 마신 기억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산에 오르는 예의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김밥 두 줄을 먹으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꾹 참는다.
한참 걷다 보니 널찍한 헬기장이 나온다. 색시 가수-요즘은 섹시하고는 거리가 먼 모습이 자주 보이는지라 이렇게 부른다- 이효리가 자기 이름의 약자가 산정상마다 있다고 우기는 H자가 쓰여 있다. 조금 내려가니 상원사와 영원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남대봉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내리막길인가. 산악회에서 온듯한 분들이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일요일인데도 이정표를 고쳐 세우고 있는 공원 관리공단 여자 직원분이 있어 남대봉이 어디냐고 물으니 조금 전 지나왔던 헬기장이라고 한다. 서울 근교에 있는 산-특히 청계산-에는 눈에 번쩍 띄는 커다란 비석이 있지만 남대봉은 이정표에만 쓰여 있어서 그냥 지나쳤나 보다. 해발 1182미터로 최근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올랐는데 인증샷없이 지나친 게 무척 아쉽다.
영원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도 무척 험하다. 발 디딜 곳만 찾느라 코앞만 보며 내려오니 고개가 아프다. 오르막길은 가슴이 터지고 뇌에 산소가 공급이 안 되는 느낌(?)이 들지만 내리막길은 고개가 아파 쉬어야만 했다. 또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가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고개 아플 일이 없을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아직도 한겨울 같은 서늘함이 남아있다. 고양이 세수를 하니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얼마를 걸어 내려오니 야영장도 있다. 여름 날씨라고는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데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펜션이나 민박을 하지 않고 굳이 야영을 택한 것이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연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여 다시 한번 산에 대한 예의가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관리사무소를 지나서 적당한 곳에 앉아 담배 하나를 피워 물었다. 굴러 내려갈 염려가 없으니 이제 다 내려왔나 보다. 버스 타는 곳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한참을 가야 한단다. 얼추 반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 같다. 비탈길이 아니라 힘은 적게 들지만 비탈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평지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터벅터벅 걸으며 생각해보니 비탈길도 치악산도 그대로지만 변한 건 저질 체력이 된 나뿐이다. 홀로 변한 내가 변함없는 비탈길을 오르며 욕을 해댔다. 평지만 걸었던 비탈 출신은 잠시 비탈이 고향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신작로에서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그림자 하나가 걷고 있다. 뒤돌아본 비탈진 산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