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도 식사 예약이 될까?

세상 좋아졌다는 말 가운데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휴게소도 적었고 배가 고파 울며 겨자 먹기로 들렸지만 사실 맛이나 위생상태는 변변치 못했다. 요즘은 휴게소마다 특색 있는 별미도 많이 생겨 고속도로를 달리며 골라 먹는 재미도 생겼다.

서해고속도로가 개통됐을 당시 상행선 방향에 있는 화성휴게소는 돈가스가 참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였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났던 것 같다. 매주 상경할 때마다 도로가 막힐 줄 알면서도 꾹 참고 기다렸다가 돈가스를 먹는 낙이 쏠쏠했다. 수학여행철이 되면 학생들이 돈가스만 먹고 가는지 조금이라도 늦으면 똑 떨어지는 비극적인 일도 생기곤 했다. 개통 당시에는 라면 코너까지 모두 남자 주방장-혹은 정식 주방장-이어서 그랬는지 맛이 괜찮았는데 조금 지나자 주방장들이 한둘 바뀌기 시작하면서 맛이 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초창기처럼 아주 맛난 것은 아니지만 형편없지는 않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행담도나 추풍령처럼 항상 붐비는 휴게소에 들르게 된다면 2층으로 가서 조용하게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대개 1층에서 볼일과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에 2층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복잡하거나 길게 늘어선 줄이 지루하다면 음식값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시라. 줄을 서는 불편함과 번잡함을 피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다.

몇 해 전 일이다. 울산으로 출장 가는 길에 금강휴게소를 재단장했다는 알림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지나다니며 리모델링하는 것을 보아왔던 터라 들려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휴게소 건물도 독특하고 예쁘게 꾸며놨다. 휴게소 바로 뒤편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일몰이 아름답다는 안내문도 눈에 띈다. 경치가 썩 괜찮아 운이 좋으면 멋진 일몰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울산은 저녁때까지 도착하면 되기에 동료들과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 보니 휴게소 건너편으로 굴다리가 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굴다리가 있는 것이 신기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기는 뭐 하는 곳일까 궁금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굴다리를 지나자 식당가가 나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일반 식당가가 있는 것을 처음 봤고 그런 풍경은 전국에서 유일할 듯싶다.

그곳은 죄다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가였다. 이럴 때는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장땡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경상식당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보니 도리뱅뱅이 유명하단다. 도리뱅뱅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검정 프라이팬을 들고 오며 도리뱅뱅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봤지 처음 보는지라 젓가락질을 하며 주인장에게 어떻게 만드는 거냐며 말을 건넸다. 금강에서 잡은 피라미에 양념을 해서 기름을 듬뿍 두른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놓고 튀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양념맛과 튀김맛이 어우러져 바삭바삭하며 고소했다. 넷이 둘러앉아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며 바닥을 박박 긁어대는 동안 매운탕이 들어왔다. 소주 한잔하고 싶지만 사정이 그런지라 배만 듬뿍 채웠다. 술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매운탕이 꽤 많이 남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없는 일, 제일 직급이 높은 양반이 계산을 치르는 동안 식당 전화번호를 저장하며 예약도 되느냐고 물었다. 지날 때 전화만 주면 준비를 해 놓는단다.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고 휴게소를 출발했다.

울산에서는 하루하루가 전투(?)의 연속이었다. 올라오기 전날에는 세 번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기름칠을 하자마자 이동해서 미리 진을 치고 있던 다른 팀과 본격적인 술자리를 하고 또 다음 팀이 있는 장소로 건너가는 식으로 강행군을 하며 옮겨 다녔다. 피아 구분이 안 되는 전투가 예상될 때는 아군에게 절대로 술잔을 돌리지 않고 순번을 정해 이번 자리에서는 네가 집중적으로 잔을 주고받고 다음 자리에서는 내가 그렇게 한다는 눈빛을 교환하며 암묵적 담합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첫 전투에서 모두 장렬히 전사하는 참극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질펀하게 세 탕을 뛰고 아군끼리 조용한 데 가서 입가심하며 무너지는 것이 수순이고 또 그렇게 했다.

아침에 돼지국밥으로 해장을 했지만 알딸딸한 기운이 그대로 남은 채 다시 올라갈 길을 재촉했다. 추풍령을 지날 때쯤 되니 다들 배가 출출함을 느꼈다. 깔깔한 입맛에 돼지국밥 국물만 들이켰으니 배가 고프기도 하겠지. 내려올 때 들린 경상식당도 생각나고 정말 예약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를 걸었다.

- 경상식당이죠. 예약 좀 하려고요.
- 그러세요. 지금 어디세요.
- 예. 한 30분쯤 후에 도착할 것 같은데요.
- 그러지 마시고 금강 휴게소까지 몇 키로 남았어요?
스치는 이정표를 보며 대답을 했다.
- 아, 예. 50킬로미터 남았네요.
- 뭐로 준비할까요?
- 도리뱅뱅 하고 매운탕이요.
- 알겠습니다.

정말 예약이 된단다. 특이한 것 하나는 몇 분 후에 도착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금강 휴게소가 몇 킬로미터 남았는지 알려 준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시간을 알려 주는 것보다 몇 킬로미터 남았는지 알려 주는 게 시간을 가늠하기가 더 편한가 보다.

금강 휴게소에 도착해서 경상식당에 들어서니 구석에 차린 상에는 밑반찬과 함께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자마자 부리나케 도리뱅뱅을 내 온다.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도리뱅뱅을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적당히 출출할 때 얼큰한 매운탕에 반주를 곁들여 먹으니 비로소 해장이 되었다. 안전운전을 책임진 운짱에게는 미안해서 미리 마지막 남은 도리뱅뱅 세 마리와 바닥을 긁을 수 있게 해줬다.

요즘도 가끔 도리뱅뱅의 고소함이 생각나지만 그렇다고 한걸음에 달려가서 먹을 수 없으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다른 휴게소도 식사 예약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사실 물어도 안 봤다- 그 후로 들릴 기회가 없어 지금도 예약이 되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 다시 지날 일이 있으면 도리뱅뱅을 주문하려고 전화번호를 찾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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