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위대하고 초라할 뿐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 염불이듯이 빈곤의 덫에 걸린 가난한 이웃들이 치료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7)
  • 공공 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렵게 사는 장애인 환자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는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난한 이웃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병원 문턱은 언제쯤 낮아질는지... 의료복지 사회는 정말 그림의 떡이다. 돈보다 사람과 노동이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26)
  • 1년에 몇 천억 원 어치의 쓰레기를 만드는 우리나라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생각하면 세상이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1%만이라도 이들과 나누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43)
  • 사람들이 병원을 이용할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과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수납 창구라는 사실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 의료 기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병원의 이윤 추구에 있다. 국가가 의료를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회복지가 천박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현상이 도드라져 사회의 양극화가 심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63)
  • 관광 수익을 올리고 국가 브랜드 가치 운운하며 노점상을 철거하고 노숙자를 지방으로 내쫓는다는 기사를 볼 때면, 개인의 삶이 국가의 체면과 체제 유지를 위해 유린당하는 현실에 화가 나곤 한다. 어린이 노동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던 15살의 눈 먼 인도 소녀 소니아는 어두컴컴한 자신의 집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축구공 2개를 만들어도 우유 1리터를 사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2002년 6월은 달동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 그런 해였다. (90)
  • 그동안 부자가 되는 것은 능력 때문이고, 가난한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주입받아 온 것은 아닌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가난과 소득의 불평등은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생존권보다 소유권이 더 신성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124)
  • 외과 의사는 수술한 환자가 방귀를 뀌거나 똥을 누었다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반가운 법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행복이 뭐 별것이겠는가? 잘 먹고 잘 싸는 것 아니겠는가! (162)
  • 내 아이의 맹장 수술을 하던 날 나에게는 돌·팔·이란 별명이 생겼다. '돈에 팔리지 않는 의사'가 되라는 뜻이라고 내 맘대로 위로하며 이 별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183)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최충언/책으로여는세상 20080825 208쪽 11,000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냉동실에 있는 어느 바자회에서 사다 먹고 남긴 수제 돈가스를 프라이팬에 데워 가위질한 후 젓가락질을 하며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두 개를 먹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때웠다. 배부른 몸뚱이를 찬물에 헹구고 나니 끈적거림이 가셨다. 한쪽 벽에 베개를 대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책장을 넘겼다.

달동네 병원에는 생강 조각 같은 손을 가진 나병 환자 할머니가 소독하러 왔고, 필리핀에서 사범대학을 나와 신발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이 으깨져 가운데 발가락을 잘라 엄지손가락을 만들어 붙인 이주 노동자 글렌도 있었다.

스스로 돌팔이라고 하는 달동네 외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가난한 환자들은 촌지로 달걀 10개를 부끄러워하며 건네고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부산 남부민동 달동네는 삶의 바다를 품고 소유권보다 생존권이 먼저라며 오늘도 출렁이는 돌팔이 의사가 있다.

편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동안 돈가스를 먹어 배가 부른 온전한 몸뚱이가 스멀스멀하다. 숨어있던 염치가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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