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체력, 치악산을 가로지르다
프롤로그
지난 오월에 치악산 향로봉에서 남대봉을 오른 후 날 잡아 종주를 해보고 싶은 과욕이 생겼다. 저질 체력이지만 날이 제일 긴 날에 새벽같이 오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6월 21일이 하지에다 일요일인지라 달력에 빨갛게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그런데 날이 가까워질수록 비나 내렸으면 하는 맘이 생겼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종주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핑계로 종주 계획을 폐기처분하려고 했다. 간절한 바람을 하늘이 눈치챘는지 토요일에 비가 내려 일요일 아침에 개였던 것 같다.
20090711 07:56 성남리 23번 종점
종주 계획은 폐기처분했던지라 그냥 가보지 않은 상원사 코스로 오르며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내려오기로 하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원주시내에서 김밥 두 줄과 컵라면 하나를 사서 넣고 성남 매표소로 가는 23번 첫 버스에 올랐다. 잠시 앉아 가다 어르신이 타기에 자리를 양보했다. 어르신은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상원사에 가는 길이라 대답했다. 어르신은 왜정 때 치악산에 올라 봤다며 오늘은 성남리에 있는 과수원에 가는 길이라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신림을 지나니 어르신이 내리고 다시 앉아 조금 더 가니 버스 종점이자 상원사 오르는 입구에 다다랐다. 상원사 5.2km, 비로봉 16km를 가리키는 이정목이 서 있다.
09:34 샘물
상원사 조금 못 미쳐 있다는 샘물에 이르렀다. 치악산에 오르는 길이 여럿 있지만 상원사 코스는 참한 새색시 같은 느낌이 든다. 치악산을 오르면 왜 이리 험한지 욕이 절로 나오곤 하는데 상원사 오르는 길은 험하지도 않고 급한 경사길도 없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물이 넘치게 흐르는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오르다 보니 땀도 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샘물을 한 사발 떠서 목을 축였다.
09:48 상원사
치악산 꿩의 전설이 전해지는 상원사다. 은혜 갚은 꿩의 전설을 들으며 치악산 기슭에서 이십여년을 살았었지만 오늘에서야 와서 본다. 절 뒤편으로 화장실 가는 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상원사는 따로 터를 닦은 것이 아니라 바위들을 그 자리에 두고 절을 지은 것 같다. 대웅전에서는 등산복을 입은 여인이 절을 하고 있다.
09:55 해발 1084m
상원사는 해발 1084m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절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게 길이 나 있는데 상원사는 오로지 등산로밖에 없다. 입구에 있는 약수로 목을 축이며 빈 물통 하나를 채우고 다시 길을 오른다.
10:21 남대봉(1181m)
힘들이지 않고 설렁설렁 오르다 보니 남대봉에 이르렀다. 지난번에 그냥 스쳐 지나갔던지라 이정목을 재확인했다. 봉우리라고 하면 표지석이나 돌탑이라도 있을 텐데 그저 헬기장 표시만 덩그러니 있다. 어디 가면 빠지지 않을 높이인데도 치악산에 있어서 그런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동정심마저 생긴다. 남대봉까지 힘들이지 않고 왔고 시간도 안내도에 나온 대로 뒤처지지 않은지라 능선을 따라가면 비로봉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로봉까지는 10km 남았다.
11:58 향로봉(1042m)
오솔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 보니 향로봉에 이르렀다. 그늘에서는 점심을 먹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남대봉을 조금 지나 김밥 두 줄을 먹었던지라 목을 축이며 잠시 쉬는데 어르신들이 술 한잔 하겠냐는 유혹을 한다. 딱 한잔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12:37 곧은치(860m)
곧은치는 곧은 길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치악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여기서 잠시 갈등을 겪는다. 남대봉과 향로봉을 거쳐 곧은치까지 오는 길은 내리막길로 힘 안 들이고 왔지만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터라 못 먹어도 고를 할지 스톱을 하고 하산을 해야 할지 네 갈래 길이 멈칫하게 만들었다. 발바닥 상태가 아직 양호하고 시간도 충분해서 직진하기로 하고 심호흡을 깊게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14:28 해발 1130m
입석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까지 왔다. 오르막길이 험하지 않게 이어졌지만 저질 체력은 숨이 턱까지 차 왔다. 돌 위에 앉아 물을 마시며 땀을 닦는데 입석사 방향에서 여인이 올라온다. "입석사에서 올라오시는 길인가 보네요?" "아니오. 길을 잘못 들어 다시 올라오는 길이에요." 숨을 헐떡거리고 쉴 자리를 찾아 앉으며 대답한다. 조금 지나자 일행인 두 여인이 올라왔다. 친구 사이인 그미들은 곧은치 방향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 입석사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는 길이라고 한다. "아이구, 산행길에서 빽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체력들이 좋으십니다." "차가 그쪽 방향에 있어서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는 길이에요." 정말 부러운 체력들이다. 조심해서 내려가시라는 말을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5:08 비로봉을 바라보며
비로봉이 바라보이는 평지다. 김밥 두 줄이 소화가 다 됐는지 허기가 졌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는데 시간이 오래돼서 그런지 미지근하다. 사발면에 물을 붓고 앉아 비로봉 돌탑을 바라다봤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는지 따끔거리고 발바닥에 불이 나지만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다. 김밥 먹을 때 남긴 단무지 세 조각을 진수성찬 삼아 채 익혀지지 않은 면발을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15:42 비로봉(1288m)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는 수많은 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고 있고 등산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바라보는 놈상만 머리가 허옇게 변했다. 젠장. 특별시 산처럼 마늘쫑과 멸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그저 입맛만 다실뿐이다. 정상은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이지 눌러앉아 있는 곳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16:43 하산길
욕이 절로 나온다. 사다리병창길은 계단이 없던 시절에 오른 적이 있어 얼마나 변했나 궁금해서 계곡길 대신 택했는데 후회가 막급이다. 올라오는 이들은 끝없는 계단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것이 방금 새로 사 입은 때때옷에 막돼먹은 급사가 커피를 쏟은 것처럼 한바탕 퍼부울 듯한 표정이다. 발가락 물집이 분기탱천했는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짜릿짜릿해 온다.
20090711 18:40 황장금표
정말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원 없이 밟고 내려왔다. 계곡에 이르러 얼굴에 물을 묻히니 정신이 번쩍 든다. 입구까지 평지길이 이어지는데 발바닥엔 불이 나지만 저질 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지친 기색은 들지 않는다. 매표소 바로 앞에는 황장금표라고 쓰인 바윗돌이 있다. 치악산 소나무는 왕실용으로 쓰고 일반인의 벌채를 금하기 위해 황장금표를 설치했다고 한다. 구룡사에 있는 소나무를 보면 곧게 뻗은 금강송이 간혹 눈에 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에필로그
저질 체력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치악산을 가로질렀다. 곧은치에서 시작되는 오르막길에서부터 사다리병창길을 내려올 때까지는 후회가 막급이었다. 지나가는 택시라도 있었으면 진작 잡아타고 줄행랑을 쳤을 테지만 산에는 누가 걸어갔고 지금 걸어야 할 길만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랑이는 볼 수 없었다. 하산하고 접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 님의 슬픈 소식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남대봉에서 향로봉으로 가는 길에 먼저 간 아우의 넋을 기리는 원주지역 산악동호회에서 세운 고 강상선 산악인의 비문이 애달프게 떠오른다.
지난 오월에 치악산 향로봉에서 남대봉을 오른 후 날 잡아 종주를 해보고 싶은 과욕이 생겼다. 저질 체력이지만 날이 제일 긴 날에 새벽같이 오르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6월 21일이 하지에다 일요일인지라 달력에 빨갛게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그런데 날이 가까워질수록 비나 내렸으면 하는 맘이 생겼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종주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핑계로 종주 계획을 폐기처분하려고 했다. 간절한 바람을 하늘이 눈치챘는지 토요일에 비가 내려 일요일 아침에 개였던 것 같다.
20090711 07:56 성남리 23번 종점
종주 계획은 폐기처분했던지라 그냥 가보지 않은 상원사 코스로 오르며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내려오기로 하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원주시내에서 김밥 두 줄과 컵라면 하나를 사서 넣고 성남 매표소로 가는 23번 첫 버스에 올랐다. 잠시 앉아 가다 어르신이 타기에 자리를 양보했다. 어르신은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상원사에 가는 길이라 대답했다. 어르신은 왜정 때 치악산에 올라 봤다며 오늘은 성남리에 있는 과수원에 가는 길이라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신림을 지나니 어르신이 내리고 다시 앉아 조금 더 가니 버스 종점이자 상원사 오르는 입구에 다다랐다. 상원사 5.2km, 비로봉 16km를 가리키는 이정목이 서 있다.
09:34 샘물
상원사 조금 못 미쳐 있다는 샘물에 이르렀다. 치악산에 오르는 길이 여럿 있지만 상원사 코스는 참한 새색시 같은 느낌이 든다. 치악산을 오르면 왜 이리 험한지 욕이 절로 나오곤 하는데 상원사 오르는 길은 험하지도 않고 급한 경사길도 없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물이 넘치게 흐르는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오르다 보니 땀도 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샘물을 한 사발 떠서 목을 축였다.
09:48 상원사
치악산 꿩의 전설이 전해지는 상원사다. 은혜 갚은 꿩의 전설을 들으며 치악산 기슭에서 이십여년을 살았었지만 오늘에서야 와서 본다. 절 뒤편으로 화장실 가는 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상원사는 따로 터를 닦은 것이 아니라 바위들을 그 자리에 두고 절을 지은 것 같다. 대웅전에서는 등산복을 입은 여인이 절을 하고 있다.
09:55 해발 1084m
상원사는 해발 1084m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절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게 길이 나 있는데 상원사는 오로지 등산로밖에 없다. 입구에 있는 약수로 목을 축이며 빈 물통 하나를 채우고 다시 길을 오른다.
10:21 남대봉(1181m)
힘들이지 않고 설렁설렁 오르다 보니 남대봉에 이르렀다. 지난번에 그냥 스쳐 지나갔던지라 이정목을 재확인했다. 봉우리라고 하면 표지석이나 돌탑이라도 있을 텐데 그저 헬기장 표시만 덩그러니 있다. 어디 가면 빠지지 않을 높이인데도 치악산에 있어서 그런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동정심마저 생긴다. 남대봉까지 힘들이지 않고 왔고 시간도 안내도에 나온 대로 뒤처지지 않은지라 능선을 따라가면 비로봉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로봉까지는 10km 남았다.
11:58 향로봉(1042m)
오솔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 보니 향로봉에 이르렀다. 그늘에서는 점심을 먹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남대봉을 조금 지나 김밥 두 줄을 먹었던지라 목을 축이며 잠시 쉬는데 어르신들이 술 한잔 하겠냐는 유혹을 한다. 딱 한잔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12:37 곧은치(860m)
곧은치는 곧은 길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치악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여기서 잠시 갈등을 겪는다. 남대봉과 향로봉을 거쳐 곧은치까지 오는 길은 내리막길로 힘 안 들이고 왔지만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터라 못 먹어도 고를 할지 스톱을 하고 하산을 해야 할지 네 갈래 길이 멈칫하게 만들었다. 발바닥 상태가 아직 양호하고 시간도 충분해서 직진하기로 하고 심호흡을 깊게 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14:28 해발 1130m
입석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까지 왔다. 오르막길이 험하지 않게 이어졌지만 저질 체력은 숨이 턱까지 차 왔다. 돌 위에 앉아 물을 마시며 땀을 닦는데 입석사 방향에서 여인이 올라온다. "입석사에서 올라오시는 길인가 보네요?" "아니오. 길을 잘못 들어 다시 올라오는 길이에요." 숨을 헐떡거리고 쉴 자리를 찾아 앉으며 대답한다. 조금 지나자 일행인 두 여인이 올라왔다. 친구 사이인 그미들은 곧은치 방향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 입석사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는 길이라고 한다. "아이구, 산행길에서 빽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체력들이 좋으십니다." "차가 그쪽 방향에 있어서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는 길이에요." 정말 부러운 체력들이다. 조심해서 내려가시라는 말을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5:08 비로봉을 바라보며
비로봉이 바라보이는 평지다. 김밥 두 줄이 소화가 다 됐는지 허기가 졌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는데 시간이 오래돼서 그런지 미지근하다. 사발면에 물을 붓고 앉아 비로봉 돌탑을 바라다봤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는지 따끔거리고 발바닥에 불이 나지만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다. 김밥 먹을 때 남긴 단무지 세 조각을 진수성찬 삼아 채 익혀지지 않은 면발을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15:42 비로봉(1288m)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는 수많은 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고 있고 등산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바라보는 놈상만 머리가 허옇게 변했다. 젠장. 특별시 산처럼 마늘쫑과 멸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그저 입맛만 다실뿐이다. 정상은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이지 눌러앉아 있는 곳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16:43 하산길
욕이 절로 나온다. 사다리병창길은 계단이 없던 시절에 오른 적이 있어 얼마나 변했나 궁금해서 계곡길 대신 택했는데 후회가 막급이다. 올라오는 이들은 끝없는 계단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것이 방금 새로 사 입은 때때옷에 막돼먹은 급사가 커피를 쏟은 것처럼 한바탕 퍼부울 듯한 표정이다. 발가락 물집이 분기탱천했는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짜릿짜릿해 온다.
20090711 18:40 황장금표
정말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원 없이 밟고 내려왔다. 계곡에 이르러 얼굴에 물을 묻히니 정신이 번쩍 든다. 입구까지 평지길이 이어지는데 발바닥엔 불이 나지만 저질 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지친 기색은 들지 않는다. 매표소 바로 앞에는 황장금표라고 쓰인 바윗돌이 있다. 치악산 소나무는 왕실용으로 쓰고 일반인의 벌채를 금하기 위해 황장금표를 설치했다고 한다. 구룡사에 있는 소나무를 보면 곧게 뻗은 금강송이 간혹 눈에 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에필로그
저질 체력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치악산을 가로질렀다. 곧은치에서 시작되는 오르막길에서부터 사다리병창길을 내려올 때까지는 후회가 막급이었다. 지나가는 택시라도 있었으면 진작 잡아타고 줄행랑을 쳤을 테지만 산에는 누가 걸어갔고 지금 걸어야 할 길만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랑이는 볼 수 없었다. 하산하고 접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 님의 슬픈 소식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남대봉에서 향로봉으로 가는 길에 먼저 간 아우의 넋을 기리는 원주지역 산악동호회에서 세운 고 강상선 산악인의 비문이 애달프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