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지대, 한계 영역에서 체험하는 존재의 확장

Grenzbereich Todeszone, 1978
  • 스위스의 의사이자 히말라야를 체험한 등반가인 에트와르 위스 뒤낭은 높이 7,500미터가 넘는 곳을 '죽음의 지대'라고 일컬었다. (6)
  • 5,300미터가 넘는 높은 곳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보다 높은 곳에 정착해 보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안데스 산맥에 있는 '아우칼킬카'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부락이다. 그곳에는 대기 속의 산소 농도가 해면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7)
  •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면 그 특징은 누구나 거의 같다. 다만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아는 계기가 주어지는 행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다. (29)
  • 영웅은 자기 생명의 깊은 뜻을 알고 있으며 한층 높은 존재까지 믿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희생하지만, 도박꾼은 자기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놀이에 건다. (56)
  • 추락 사고를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클라이머들은 이구동성으로 낙하 중에 수없이 많은 영상들, 특히 전생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100)
  • 떨어지는 동안 내 영혼은(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 내 육체 안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바깥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141)
  • 자기 자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는 것' 자체를 말한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생명력 있는 자기 경험을 말한다. 새로운 경험을 지속하지 않는 사람은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썩어가는 물과 같다. (158)
  • 8,000미터 정상까지 가는 길은 멀다. 그것은 인생의 길인 동시에 죽음의 길이다. (...) 마치 자기 몸에서 나와 자기를 보듯이, 높이 오를수록 스스로가 더욱 맑고 뚜렷하게 보이며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가 온 정열을 쏟은 정상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의 것이 된다. 그는 환하게 빛을 내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이상적인 경우 열반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214)
  • 나는 자연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다만 내가 자연을 어떻게 체험하며 자연 속에서 자기를 어떻게 체험하느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221)
  • 살아서 돌아온 자는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다. (...) 그에게 그후의 인생은 덤이자 여생이며 그는 휴가를 얻고 다시 돌아온 사자(死者)다. (235)
  • 나는 이 책에서 이제까지 산악 문학에서 서자 취급을 당해 온 것들을 다루었다. 그것은 환상체험이며, 이 체험은 극한 상황에서 인식의 능력이 확장되는 것으로서,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참다운 자기를 인식하게 만든다. (247)
  • 인생을 아는 자, 다시 말해서 자기 인생을 걸고 '무無'와 대면한 일이 있는 자는 결코 남을 죽이지 못한다. 그에게는 재물, 권력, 우상, 이데올로기 등이 2차적인 의미밖에 지나지 못한다. (250)

죽음의 지대Grenzbereich Todeszone, 1978/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김영도 역/한문화 20070326 262쪽 11,000원

7,500미터가 넘는 산에 오를 일이 없으니 그곳에서 추락할 일은 더더군다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다만 동네 뒷산을 오르더라도 평지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으로 봐서는 죽음의 지대라 부르는 한계 영역에서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내면의 등반을 온전히 거부할 수는 없으리라. 그네들이 겪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추락의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산에 오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으로 봐서는 분명히 높이만큼 존재가 확장되는 체험을 하리라 추측할 뿐이다.

죽음의 지대를 경험한 등반가가 존재에 대해 겸허해지는 사연이 그곳에 있었다. 뒷산 약수터를 새벽마다 오르는 불한당이 세상에 없는 이유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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