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0을 원한다
1.
지난 추석날 새벽에 미국과 붙은 U-20 월드컵 예선전을 보았습니다. 참 잘하데요. 무엇보다 똥볼없이 아기자기하게 패스를 하며 골을 넣는 것이 달라 보이더군요. 3대 0으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해서 밤새워 본 사역을 헛되게 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16강에서 만난 가나에 져서 8강 진출이 좌절됐는지라 유선방송에서 다시 보여주는 브라질과 겨루는 결승전을 보았습니다. 후반전이 끝날 무렵부터 봤는데 가나 선수 한 명이 전반전에 퇴장당하고도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비기고 승부차기를 하데요. 그런데 승부차기가 명승부였습니다.
브라질이 선축한 승부차기는 3명이 모두 성공했지만 가나는 3번째 킥이 브라질 골키퍼에 막혀 3-2가 되었습니다. 4번째 킥은 양팀 모두 골키퍼에 막혔고, 브라질은 5번째 키커만 성공하면 우승할 기회를 잡았는데 그만 골대를 넘기는 똥볼을 차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가나는 5번째 킥을 넣어서 3-3을 만들었습니다. 6번째로 나선 브라질 선수의 킥은 가나 골키퍼가 막아냈고, 이어 가나의 6번째 키커가 승부차기를 성공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더군요.
가나의 우승은 아프리카 팀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라고 합니다. 브라질의 슈팅을 두 번이나 막아낸 가나 골키퍼는 골대 위로 올라가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축구 강국인 브라질보다는 아프리카 가나를 응원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모처럼 스포츠만 만들 수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여줬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명승부였습니다.
2.
올 국정감사에서는 왕건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소총은 몇 발 쐈지만 그닥 이슈를 만들지는 못했죠. 짐작은 했지만 전경들에게만 미친소를 먹였다는 것을 보며 혼자서 욕을 바가지로 했지만요. 하루아침에 피감 기관이 개과천선 했을 리가 만무한데 소총이나 쏘다 만 것은 오는 28일에 있는 재보선 때문이겠지요.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국정감사를 제대로 할 리가 없으니까요. 아쉬운 것은 야권이라도 발에 땀이 나도록 준비를 해서 왕건이를 건졌으면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었지만, 막판 바람에 따라 좌우되는 총선과 달리 아무래도 재보선은 지역색이 강하니 먹히지 않을 것을 알고 어영부영 후다닥 넘긴 감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국회의원 중에 국정감사 때 가장 좋은 보직은 외통부라고 하더군요. 국외에 있는 기관을 감사한다며 비행기를 타고 가니 아마도 놀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일 겁니다. 물론 확인 안 된 유비통신입니다.
10월 28일에 있을 재보선은 5곳이네요. 공식 선거기간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당선을 점치고 있습니다. 뻔한 유세지만 여권은 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며 나불대고, 야권은 정부를 견제하려면 나를 뽑아 달라고 읍소하고 있습니다. 참말로 변하지 않는 식상한 레퍼토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권자인 우리가 변한 거 없이 개차반이니 딱 투표 전날까지만 굽실거리며 표를 달라는 그들만 탓할 수는 없겠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번 재보선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에서 싹쓸이를 해서 5-0으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여당에서 싹쓸이하면 기고만장하며 어깨에 더욱 힘을 주겠지만 대신 완봉패를 당한 야권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가까이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옹골차게 준비할 것이고, 멀리는 대선을 위해 더는 분열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쓸개를 씹어 먹으며 와신상담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반대로 야당에서 싹쓸이하고 여당이 참패하면 두말할 필요 있나요. 민심이 진작 떠났음을 알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 다시는 삽질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싹쓸이하지 못하고 뿜빠이를 할 경우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제각각 유리하게 선거 결과를 해석하며 안주를 하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다시 지겹게 샅바 싸움하는 그들을 지켜보다 가슴을 후려치며 이 땅을 떠나려는 희망을 품고 로또를 사러 갈 겁니다.
3.
가나가 보여준 멋진 승부차기는 김수현 작가도 쓰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10월 28일, 우리는 가나보다 더 기똥차고 알찬 승부차기를 하길 기대합니다.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바램은 5-0으로 일방적이면서 아주 잔인하게 끝나길 원합니다. 젭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