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자

1.
누구나 내 마음의 자는 가지고 있다. 가령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좋아하는 이에게 산울림 노래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별로라는 대답을 듣고 평소 청춘을 즐겨 들었다고 성을 내지는 않았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으니까.

신입사원 시절. 선배가 노기스를 가져 오란다. 노기스? 그게 뭐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 낭패한 표정을 지으니 선배가 말한다. 노기스는 버니어캘리퍼스를 부르는 말이라고. 노가다나 기름쟁이들은 그렇게 부른다고. 노기스라는 말을 모른다고 삶에 지장은 없지만 적어도 그 상황에서 배운대로 버니어캘리퍼스가 표준말이라고 대들었다면 너 잘났다는 뒷담화를 들었을 게다.

DJ는 빨갱이라는 시절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대통령을 찍은 사람이 DJ였다. 그때는 술상머리에서 DJ 얘기를 하면 눈총을 받고 심하면 집시법 위반으로 시비를 걸던 시절이었다.

내 마음의 자는 산울림이 부르던 청춘을 좋아했고, 버니어캘리퍼스가 표준말이고 DJ가 빨갱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눈을 치켜뜨며 대들지 않았다. 그건 네 마음의 자도 내 마음의 자만큼 중요하고, 내 마음의 자가 변하지 않는 만큼 네 마음의 자도 변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감대가 서로 같지는 않았지만 겹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정의나 진리 혹은 적어도 사실이라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2.
사법고시와 검정고시는 같은 고시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지만 똑똑한 양반들만 합격하는 걸 보면 그 격이 다르긴 하나 보다. 그런 양반들이 PD수첩 일심 판결에 엄청 뿔이 났나 보다. 무죄 판결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검사 양반들이 그렇게까지 열을 내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열불 나는 정력의 반의반만 가지고 조두순 사건을 항소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버이 연합에 어떤 어버이들이 가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법원장에게 계란을 던지고 가스통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더 웃긴 건 이를 지켜보던 경찰 나리들은 다 늦게 뒷북 수사에 착수하신다고 한다. 촛불을 든 꼬마에겐 들고 다니지도 못하게 했던 행태를 봐서는 너무 이른 대응(?)이라고 봐야 하나.

마음을 비우고 어여삐 생각해도 그 양반들은 어떤 잣대를 가졌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기럭지가 달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형상을 한 잣대를 가지고 열불을 내고, 뒷북을 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순박하게 자질을 너무 하다 보니 닳아 없어졌거나 잃어버렸다고 하면 애교스럽기나 할 텐데.

3.
오늘 슬쩍 아무도 몰래 내 마음의 자를 꺼내 몇 자나 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본다. 엄청 짧다.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조금이라도 자라길 바랬는데 오히려 길이가 서로 다른 자가 몇 개 더 나왔다. 언제 이리도 많은 자를 꼬불쳐 두었는지... ㅜ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