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5·18을 기억하다

1.
내가 다시 태어난 해인 1984년 어느 날.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가려고 고속버스표를 끊고 자리에 올랐다.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내 자리를 찾았다. 묘령의 아가씨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반가운 표정을 숨기며 궁둥이를 의자에 슬쩍 걸치며 앉았다. 이럴 땐 첫마디가 중요해. 저... 서울 가시나 봐요. 젠장. 서울 가는 버스에 탔으니 서울까지 가는 게 당연하지. 뻔한 말을 내뱉다니. 그런데 후회할 시간도 없이 귤을 건네주며 그렇다고 한다. 친구들 셋이랑 치악산에 왔다가 가는 길이라며 싱긋 웃는다. 오호라. 서울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무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버스표를 석 장 끊으니 한 사람은 떨어져 앉아야 하는데 그 옆자리가 내 차지가 된 것이다. 건네주는 귤을 까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 처자의 고향이 광주라고 했다. 아! 광주.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몰래 훔쳐본 공수부대 군화발과 금남로로 각인된 그 광주라니. 아주 조용히 그날의 광주에 대해 물었다. 잠시 창밖을 쳐다보던 그 처자는 기름기가 쏙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우리 삼촌도 돌아가셨어요.

픽션일지도 모른다며 반신반의했던 금남로에 뿌려진 피가 사실이었다는 걸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버스는 용인을 지나고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귤만 만지작거렸다.

2.
1990년 1월. 광주에서 유명한 우다방을 거쳐 도청 앞 분수대를 찾았다.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했다.

3.
2010년 5월. 버스 요금이 70원이라던 분이 5·18 기념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에 형형색색의 축하화환을 보냈다고 한다. 5·18 민주묘지에서는 공식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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