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선생님 아직은 용서할 때가 아닙니다
1985년 9월 4일은 2년간 민청련 의장으로 있으면서 7번째 구류를 살던 김근태가 석방되는 날이었다. 비 내리던 이날 새벽 김근태는 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되는 대신, 남영동의 악명 높은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이곳에서 김근태는 9월 25일까지 23일간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 김근태는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는 저들의 요구에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월북했으며 간첩으로 남파된 형들과 자주 만났다는 황당한 소설을 사실이라고 시인해야 했다. - 김근태 고문사건과 사법부
천상병 시인과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인 청암 송건호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파킨슨병으로 타계하셨습니다. 김근태 선생도 위독하다고 합니다. 딸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입원한 그도 수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왔다고 합니다.
어느 책에서 김근태 선생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하는 마음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을 교도소로 찾아간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물도 없이 용서를 구하는 고문기술자를 앞에 두고 잠깐 회의가 들었지만 모든 걸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정작 용서한다고는 했지만 정말 용서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용서하는 길은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이었습니다.
2008년 총선 때 도봉갑 유권자는 원칙주의자이자 민주화 운동 큰 형님인 김근태 대신 뉴라이트 신지호를 선택했습니다. 목사가 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고문이 일종의 예술이라고 했답니다. 전두환 이름을 딴 가카배 골프대회는 올해도 대구에서 열렸답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뻔뻔하게 사는 가해자들을 두고 김근태 선생이 영원히 용서하는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비보가 들립니다. 오늘이 고비라고 합니다. 고문기술자로 용서를 구하고 목사가 됐다는 이근안이 병상을 찾았다는 소식이 아직 없습니다. 지독하게 건강한 전두환은 사과 한마디도 없습니다. 여전히 뉴라이트 면상을 봐야 하고 잡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그래서 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은 용서할 때가 아닙니다. 용서하지 마십시오.
떨치고 일어나시길 기도합니다.
덧. 20111230 05:31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이 향년 64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