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알리바이 담론은 집어치워라

정치의 발견
  •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진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17)
  •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의 매력을 갖는 데 소홀하다면 그것은 진보의 독선은 될지언정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인간적으로 친화성을 넓히는 데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5)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날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비극성의 기원은, 제대로 된 정치가의 부재에 있지, 정치가의 힘든 처지를 이해 못하는 시민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43)
  • 타협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한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 (60)
  • 분노와 열정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가장 근복적인 에너지라 할지라도, 그래도 뭔가 가치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으려면 이성과 합리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65)
  • 이념도 정치도 운동도 아이들이 웃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67)
  • 민주주의가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르러서다. 다시 말해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뒤이은 세계대전의 비극적 경험을 거치고 나서야 "좌파는 혁명을 포기하고 우파는 착취를 포기하는 길"을 받아들였고 그 위에서 민주주의가 비로소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92)
  • 정당을 통해 갈등의 수를 줄이되 갈등의 규모는 사회화 해서, 가장 바람직한 공익이 뭔지를 정당들이 서로 대표하게 하고, 그렇게 형성된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의 대안이 선거에서 경합하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104)
  • 문제는 깨어나지 못한 시민이 아니라 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치 세력에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왜 어려운 것일까. 그런 전환을 억압하면서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알리바이 담론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110)
  • 민주주의는 큰 변화를 잘 허용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매우 강고한 제도적 정당화의 원리를 갖는다. (117)
  • 민주주의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잠재된 갈등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121)
  •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진보정치가 겪은 진통이 우리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유럽 좌파가 1백 년 전에 경험한 것을 지금 우리가 형태만 달리 해서 반복하고 있다. (129)
  •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몰라도 일단 민주정치에 참여하겠다고 하면 진보의 이론은 정치적 실천의 적극성을 가능케 해야 하고, 연합을 하는 것도 적극적 실천을 위한 선택이어야 하지 그 자체로 끝나면 안 된다. (137)
  • 진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보수만이 아니다. 오히려 반민주적 좌파 내지 혁명적 좌파와의 싸움이 더 힘들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민주주의하에서 진보는 성장, 집권하기 어렵다. (141)
  • 우리 사회처럼 도덕성이 강조되는 정치도 없지만 한국 정치가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은, 한국의 정치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성을 따지는 동안 실제 개선해야 할 정치의 현실을 놓쳐 버리고 결과적으로 부도덕한 정치 현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143)
  • 이념이 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이념을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148)
  • 통치의 정치학을 진보가 발전시키지 않은 채, 저항의 정치학만 고수한다면 끊임없이 제기될 이슈들과 요구들 사이에서 분열만 게속하게 될 것이다. (169)
  • 인간적 삶을 풍부하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진보적이어야 하고, 민주주의의 정치적 내용이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공정하게 실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보적이어야 하지, 거꾸로 진보적인 것에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종속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172)
  • 진보의 열정이 정치적 이성과 만나고 그것이 좀 더 넓고 풍부한 인간적인 기초 위에서 성장해 갈 때 진보 정치는 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174)
  • 투표 불참자의 수는 결국 그들이 "기대하는 대안이 억압된 크기"를 말해 준다고 보았다. (203)
  • 박근혜는 이명박보다 못하고, 더 위험할 수 있다. (208)

정치의 발견/박상훈/폴리테이아 20110124 216쪽 11,000원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있는 저자가 정치가 심상정 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2010년 11월부터 5회에 걸쳐 이루어진 강의를 엮은 책이다. '진보파에게 말 걸기'라는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과 비교하며 읽으면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진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보수뿐만 아니라 반민주적 좌파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집권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 진보는 왜 그 모양이냐는 지적에 대한 답도 알려 준다. 우리나라가 얻은 민주주의가 속성이었다면 진보 좌파는 서유럽 좌파가 1백 년 전에 경험한 것을 방금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것에 인간적인 가치를 종속시키며 분열과 실패의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알리바이 담론(변명)을 거두고 진보 정치의 매력을 키우라며 일침을 가한다.

투표 불참자의 수가 그들이 기대하는 대안이 억압된 크기라고 한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 계속 떨어지는 투표율은 보수 양당제를 대체할 진보 정치를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진보 정치가 선택의 대안이 되려는 성장과 변화의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현실체제를 쉽게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에 가치를 앞세워 스스로 고립화되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우리가 한 2년쯤 지나 다시 만나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말하게 될 것인가?" 책의 말미에 던지는 질문이다. 아마도 대선을 염두에 두면서 한 말이 아닐까 맘대로 추측해 본다. "박근혜는 이명박보다 더 못하고,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화되는 것 같아 두렵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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