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식 투표는 원시적인가?

선거하는 나라의 투표용지를 보면 재밌습니다. 기호와 이름뿐만 아니라 후보자 사진이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문맹률이 높고 군소 정당이 많은 인도는 정당의 상징물도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정당 상징물로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답니다. 우리도 그랬던 시절이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문맹 유권자를 위해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기로 기호를 표기했습니다. 이러한 투표용지에 표시하는 방식을 객관식 투표라고 합니다.

이와는 달리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직접 손으로 쓰는 주관식 투표 방식이 있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1960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딱 한 번 채택했었답니다.

기표식 투표(記票式投票)나 자서식 투표(自書式投票)라고 하지만 객관식 투표와 주관식 투표로 부르면 더 와 닿고 실감이 납니다. 사지선다형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객관식 세대라서 그런가 봅니다.

일본처럼 주관식 투표를 하는 선거가 불편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이 있습니다. 객관식 투표보다 개표에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필적(筆跡)으로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어 비밀주의에 어긋날 수 있으니까요. 가장 큰 문제는 문맹자의 투표를 제한하니까 원시적이라고 합니다.

과연 주관식 투표가 비민주적이고 원시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불거진 개표부정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투표용지를 미리 만들 필요가 없어 중도 사퇴로 인한 혼란을 막아줍니다. 투표의 유효율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후보자 이름도 모르며 기호○번을 찍는 묻지마 투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후보를 지지하고 이름을 손수 쓰려면 적어도 공약집을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합니다. 도장을 찍는 것과 달리 정치에 한뼘 더 적극적이게 됩니다. 어쩌면 자신이 직접 썼던 후보가 개판을 치면 일말의 책임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문자 문맹자보다 정치 문맹자가 많다면 주관식 투표가 객관식 투표보다 더 민주스럽고 선진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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