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나는 콜럼버스가 용맹한 뱃사람이었음을 인정했지만, 또한 이 대륙에 도착한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 친절한 아라와크 족을 사악하게 대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 콜럼버스는 서구 문명의 가장 못된 가치들을 표상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10)
- 나는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된 정부가 아니라고 설명하려 애썼다. (...) 어떤 정부가 이런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질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14)
-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받는 보상은 미래의 승리에 대한 전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 있다는,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작은 승리를 기뻐하고 가슴 아픈 패배를 참아 내는 과정에서 고양된 느낌이다 - 함께 말이다. (159)
- 세계에는 자유와 인권을 가로막는 사악한 적들이 분명 있긴 하지만, 전쟁 자체가 가장 사악한 적이라고 나는 결론 내리고 있었다. 또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인도적이라고 마땅히 주장할 순 있지만, 그 차이가 현대적인 대규모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는 것도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186)
- 역사는 여러 모로 편리하다. 만약 당신이 어제 태어나서 과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정부가 하는 말을 무엇이든 쉽게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의심을 품을 수 있고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진실을 알게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197)
- 의심의 여지없이, 어떤 나라의 사법 체제든 정치적 반대파에게는 커다란 역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순응을 강요하는 압력이 아무리 강력하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은 불의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항하여 감히 자신들의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한 역사적 가능성에 희망이 존재한다. (297)
- 1992년에 이르자 전국 곳곳의 수천 명의 교사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콜럼버스 이야기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미국 원주민들에게 있어 콜럼버스와 그의 부하들은 영웅이 아니라 약탈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381)
- 혁명적 변화는 한 차례의 격변의 순간으로서가 아니라 끝없는 놀람의 연속, 보다 좋은 사회를 향한 지그재그 꼴의 움직임으로 오는 것이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384)
-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을 본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하게 행동한 시대와 장소들을 기억한다면,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적어도 이 팽이 같은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385)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 1994/하워드 진Howard Zinn/유강은 역/이후 20160127 392쪽 16,500원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 하워드 진을 가리켜 '언제나 행동의 전범이자 믿음직한 안내자'라고 한 노암 촘스키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에서 '중립적이라는 함은 그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가 잘못 흘러가고 있을 때 중립을 지키는 것은 그 잘못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역사의 진보가 이뤄지고 부당한 질서가 무너진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행동할 때 가능했다. 하워드 진의 명쾌한 진단이자 희망이다.
역사의 진보가 이뤄지고 부당한 질서가 무너진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으로 행동할 때 가능했다. 하워드 진의 명쾌한 진단이자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