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어디 사세요?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유목민' 사회의 주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 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우리는 사는 지역과 집 소유 여부, 주택 형태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정해지고, 삶의 질마저 저당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16)

임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주택비용은 소득과 고용의 불안정과 더불어 미래 세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88만원 세대'는 일자리 부족과 낮은 임금 때문에 내 집 마련이 어려워 결혼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기혼자들은 버거운 주택 대출 비용에다가 양육비를 감안하면 아이 낳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69)

결국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줄 여력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집 마련 문제로 결혼과 미래마저 어려운 현실로 내몰리는 셈이다. 또는 '무주택자'라는 주택시장의 하위 지위가 대물림되거나, 결혼에 있어서 불리한 지위가 될 수도 있다. (79)

건설 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로 구성된 '부동산 5적'이 투기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치와 토건 산업이 유착되면 주거정책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싸고 질 좋은' 집을 담는 그릇이 되기 어려워진다. 특히 수입으로 공급을 조절할 수 없는 주택이란 상품의 특성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 질서의 혼란은 곧장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09)

우리 사회에서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대학 배치표에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가늠하듯,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함축하는 질문이다. 거주 공간과 형태가 '계급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지역, 어떤 도시의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자가 또는 임대로 사는지 여부가 삶의 질을 가르고 바꿔놓는다. 사실 공간의 양극화는 한국 사회의 계급적인 불평등이 드러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공간은 서울과 지방과의 차이로, 그리고 서울 안에서 사는 동네가 갈리면서 다시 한번 구체화된다. (181)

서구사회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주거'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 '복지'를 개인의 힘으로 풀어야 할 숙제 정도로만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폭등한 집값은 각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고 사회공동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기에 이르고 있다. (187)

어디 사세요?/경향신문 특별취재팀/사계절 20101207 340쪽 15,800원

부동산의 대물림은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되고, 공간의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집값을 안정화 시키는 혁명적 대안은 이미 많은 이가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5적과 그에 포섭되거나 편승한 최고 권력이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책에서 다룬 독일식 임대주택과 세입자 보호정책, 일본의 버블 붕괴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아쉬운 느낌이다. 파격적인 부동산 정책에 대한 사례나 대안을 함께 제시했으면 더 좋았겠다.

'어디 사세요?'라는 물음이 계급적 지위가 아니라 소유의 종말을 묻는 시대가 됐으면 싶다.
- 어디 사세요?
- 강남이요.
- 어머! 요즘도 집을 사는 분이 계셨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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