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 유적. 남겨진 것들. 여행지에서 조각상과 건축물을 보며 머릿속에 천둥번개가 지나가는 것 같고 가슴이 묵지근해 발걸음을 떼기 힘들 때가 있다. 이런 압도적인 감정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유적의 크기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의 63빌딩이나 강남의 주상 복합 아파트 앞에서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 감정의 또 다른 축은 거기 쌓아올려진 시간의 무게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다. (...) 이런 유적들이 전쟁 속에 무너져 간다. 역사의 무게감이 바스러지고 있다. (14)
  • 너그러운 전쟁은 없다 (55)
  • 유엔 사이트에 따르면 매해 부자 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이 2억 2200만 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 해에 생산하는 먹거리 2억 3000만 톤과 비슷한 규모다. (103)
  • 세계의 대양 표면에 떠도는 미세 플라스틱이 26만 9000톤에 이르며, 이는 "페트병 60억 개가 바다 위에 떠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늘어놓으면 지구를 50바퀴 돌 만큼 엄청난 양이다. (117)
  • 외계의 일을 이야기하기엔, 우리가 지구 안에서 저지르는 일들이 너무 심각하다. 진공의 우주보다 훨씬 걱정되는 것은 포화 상태의 지구다. 우리는 책임지지 못할 물건들로 지구를 뒤덮고 있다. 세계의 쓰레기는 아마도 2100년쯤 최고조에 이를 듯하다. (173)
  • 해마다 세계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 양은 21억 톤으로 추산된다. 이 쓰레기를 실은 트럭을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24바퀴 휘감는다고 한다. (176)
  • 해마다 발생하는 21억 톤의 쓰레기는 소비가 미덕이고, 성장이 유일한 목표인 경제구조와 문화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닷가를 캔과 병 조각들로 뒤덮은 것은 우리 모두였다. (179)
  •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것은 기상이변과 홍수만이 아니다. 지구 북단에서는 얼음 땅에 살던 토착민들이 생활 터전을 잃으면서 고유 언어가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이동과 언어의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 (285)
  • 노동하며 사는 아이들. 작은 몸, 작은 손으로 목숨 걸고 일하며 간신히 살아가고, 그렇게 제 몸을 팔아 가족뿐만 아니라 지구 어딘가의 '부유한 사람들'까지 먹여 살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방법은 뭘까? 먹고살아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39)
  •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또 버려지는 상품은 뭘까? 21세기에 가장 싸고 가장 많이 쓰이다 버려지는 건 '사람'인 듯하다. 아이들은 특히 약하고 값싼 '생산 도구'이다. (343)
  • 결국 난민은, 이주자는 누구인가. 지구적인 경쟁에서 내몰린 사람들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살 수 없어 다른 땅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다. (...) 난민을 받아들이 못하는 사회, 나보다 형편이 못한 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빗장을 닫아거는 사회는 아귀다툼의 사회다. (...) 저임금 노동자들의 무한 경쟁만 남아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난민이며 저들이 우리의 미래다. (365)
  • 우리끼리는 이 책을 '쓰레기 책'이라 불렀다.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지 알지 못한 채, 베어지는 나무와 버려지는 종이를 더 만들어 낼지도 모를 책을 쓰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370)
  • 곁에 두고 쓰던 물건은 물론이고 시간과 공간도 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 무덤이, 공원이, 때로는 도시 자체가 버려진다. 죽음도 역사도 버려진다. 시간이 흘러 잊히는 것도 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감추는 것도 있다. 버려지는 것들 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하지만 가장 큰 역설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폐기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371)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구정은/후마니타스 20181130 392쪽 17,000원

절대 너그럽지 않은 전쟁이 역사의 무게를 줄이고 있다. 한쪽에선 먹거리의 1/3을 버리는데 한쪽에선 굶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은 다른 종을 멸종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가장 많이 쓰고 버린다.

쓰레기가 아닌 '쓰레기 책'을 쓰레기가 쓰레기를 만들며 읽었다. 죄스럽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