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산책

식물 산책
물을 자주 안 줘도 웬만해서 죽지 않는 식물을 찾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식물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지만, 식물은 내게 많은 걸 해주길 바(226)'라는 거지요.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인데 말이죠. '식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어쩌면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고, 그럴 기회를 가져본 적도 없기 때문(45)'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식물에 대한 예의가 없었음을 반성합니다.

식물 기록은 사진으로 남기면 되는데 굳이 그림을 그릴까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대로 담기는 사진에는 식물 개체 각각의 변이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식물의 종 특징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없(146)'습니다. 반면 식물세밀화는 극사실주의 그림이 아니라 '식물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은 확대하고 강조하되, 식물 개체의 환경 변이와 같이 종의 특징이 아닌 면은 축소하는 해부도(89)'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세밀화는 식물의 '뿌리와 줄기, 잎, 꽃, 열매 그리고 수피, 겨울눈과 같은 기관이 그림 한 장에 모두 기록(96)'하는 과학 기록물입니다. '덕분에 식물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특징을 잡아내기도 용이(146)'합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했지만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이름 없는 신종식물'이었던 울릉바늘꽃을 그리는 식물세밀화가의 떨림이 전해집니다. '내 그림으로 이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다는 사실, 그리고 내 그림이 영원히 남을 이 종의 첫 그림 기록이라는 사실(81)'은 특별했을 겁니다.

사진과 그림 속을 산책하다 보면 '쓸모없는 식물은 없다(165)'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식물세밀화는 사진을 보면서 그리는 게 아니라 식물의 개체를 직접 보고 그립니다. 딸기 표면에 맺힌 200개가 넘는 씨앗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표지의 상사화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숲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식물세밀화가에게 나무가 시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네가 아무리 선을 그어봤자, 내 가지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은 못 그을걸?(274)'

식물 산책/이소영/글항아리 20180417 288쪽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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