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터리어스 RBG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이나 있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전원"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전원이 남성일 때는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미연방대법원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는 전설적인 래퍼 노터리어스 BIG(Notorious BIG)를 오마주하여 노터리어스 RBG(Notorious RBG)로 불립니다. 보수적인 대법원 판결에 대해 소수의견을 많이 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RBG가 로스쿨에 입학할 때는 '좋은 남편감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것이 권장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여성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일자리를 구하고, 로스쿨에 진학한다는 게 대단히 이례적인 일(26)'이었습니다. 훗날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시절에 신입생들에게 뼈있는 농담을 합니다. '나는 요즘 하버드대 로스쿨에 들어오는 상당수 남성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여성을 찾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100)'
RBG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되었을 때도 '법복을 갈아입는 탈의실 근처에는 남성용 화장실밖에 없었(148)'습니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자기 집무실로 가야만 했습니다. '여성은 느끼고 남성은 사고한다(56)'는 차별이 대법원에도 있었습니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불평등은 RBG를 '폭탄을 던지기보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26)'으로 만들었습니다.
RBG가 지금과 같은 악명(?)을 얻게 된 배경에는 가족들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하루 전날 돌아가신 친어머니는 딸 앞으로 8000달러의 학자금을 남겼습니다. 가정주부였던 시어머니는 결혼식 뒤에 '하버드대에 함께 진학해서 학업을 이어가면 좋겠다(49)'고 했습니다. 남편인 마티도 '나는 처음부터 아내가 하는 일을 지지했습니다. 아내 역시 내가 하는 일을 응원했고요. 이건 희생이 아닙니다. 가족이죠.(131)'라며 RBG의 파트너로 일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물론 RBG의 재능과 열정이 뛰어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더불어 일한다면 이 세상도 더 나은 곳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성이 우월한 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우월한 성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재능을 한껏 펼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한때 굳게 닫아두었던 문을 활짝 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102)' RBG는 '여성에게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는 주장이 도리어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96)'을 잘 알고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포용이야말로 RBG가 평생을 바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223)'입니다.
노터리어스 RBG에게 '헌법이 아름다운 까닭은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241)'습니다.
노터리어스 RBGNotorious RBG: The Life and Times of Ruth Bader Ginsburg, 2015/아이린 카먼Irin Carmon, 셔나 크니즈닉Shana Knizhnik/정태영 역/글항아리 20161021 272쪽 23,000원
덧. 20200920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0315~20200918) 연방대법관이 현지시간 18일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전이성 췌장암으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긴즈버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1993년 대법관에 지명됐고, 대법원에서 27년간 봉직했다. 60년 이상 법률가로 활동하면서 긴즈버그는 미국에서 진보와 보수 모두의 존경을 받는 독보적인 법학자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