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역사의 빈틈을 채우는 소설가

라면의 황제
김희선 작가의 소설집 《라면의 황제》(자음과모음, 2014)를 읽었습니다. 소설인데 사실처럼 읽혀집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때문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만든 국민교육헌장의 탄생 비화를 그린 「교육의 탄생」은 허구로 읽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전문을 암송하며 믿었으니까요. 우주인 모습으로 나타난 난민과 그 난민을 식품으로 가공하는 「지상 최대의 쇼」와 「경이로운 도시」는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텃세와 이기심을 그대로 그렸습니다. 「2098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황우석 박사가 연상이 됩니다.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에는 한국과 이란의 현대사가 얽혀있습니다. 「라면의 황제」는 라면이 금지 식품이 된 가까운 미래에 27년간 라면만 먹은 이를 추적합니다. '인류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혹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대신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탐닉'하는 시대라서 말이죠.

아홉 편의 단편을 읽다 보면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주변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인 「공의 기원」도 찾아 읽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주의, 맑시즘과 자본주의 역사를 비틀어 얘기하지만 심각하지 않습니다. 역시 재미있습니다.

그럴듯한 구라를 치는 이에게 소설 쓰지 말라고 합니다. 김희선 작가가 딱 그렇습니다. 역사의 빈틈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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