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독 흰 고독
1970년 동생 귄터와 루팔벽을 넘어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눈사태로 동생을 잃는다. 이 비극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77년 아내와도 이혼한다. '순간 슬픔과 함께 눈사태와 같은 무언가가 덮쳐 왔다. 그것은 노여움도 스스로에 대한 힐난도 아니었다. 바로 고독이었다.(35)' 검은 고독이었다.
1978년 5월,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을 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해 6월 30일, 20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낭가파르바트로 향했다. '밑에서부터 완전히 혼자 오르고 싶(127)'어서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올라 '궁극적인 고독의 끝까지 가서 그 고독을 넘어 보려는 것(61)'이다.
8월 6일. 정오가 지날 무렵 홀로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열흘이 지나 '영영 산에서 내려오지 않더라도 나를 찾지 않기를 바(162)'라면서 열흘 치 식량이 든 15킬로그램 되는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8월 9일 16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205)' 정상에는 메스너와 그의 그림자뿐이다. 정상은 '고독에 대한 불안과 고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 화해한 것인지도 모른다.(192)' 그곳에서 메스너는 처음으로 흰 고독을 체험했다.
8월 11일 오전 다섯 시. '날씨가 아직 별로 좋지 않았으나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228)' 텐트, 침낭, 버너와 식량도 모두 버리고 내려가기로 했다. '배낭에는 서너 통의 필름과 카메라, 고도계 그리고 색안경 등 자질구레한 것만 남겨 두었다.(228)' 오늘 안에 베이스캠프까지 가려고 새로운 루트로 하산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하루 만에 내려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해 놀라면서 축하를 했다.
1986년, 로체를 끝으로 매스너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8천미터 봉우리 14좌를 모두 무산소 등정했다. 1944년생인 매스너는 60세인 2004년 고비 사막도 횡단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유럽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정상에 섰다고 '고독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 여전히 고독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 점이 또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248)'이라고 한다. 고비 사막을 횡단한 후 "잘 늙는 것은 아직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도전"이라고 했다.
높은 산에 올라 흰 고독을 느낄 깜냥도 안되니 곱게 잘 늙어가는 것에 도전해야겠다.
검은 고독 흰 고독Die weiße Einsamkeit, 2003/라인홀드 메스너Reinhold Messner/김영도 역/필로소픽 20131025 272쪽 14,500원
덧. 1978년 6월 30일 뮌헨 림 공항을 떠났는데(54쪽), 6월 12일 오전 열 시 우리는 차로 라왈핀디를 떠나 이동(71쪽)한다고 했다. 날짜 오류인지 싶다.
1978년 5월,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을 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해 6월 30일, 20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낭가파르바트로 향했다. '밑에서부터 완전히 혼자 오르고 싶(127)'어서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올라 '궁극적인 고독의 끝까지 가서 그 고독을 넘어 보려는 것(61)'이다.
8월 6일. 정오가 지날 무렵 홀로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열흘이 지나 '영영 산에서 내려오지 않더라도 나를 찾지 않기를 바(162)'라면서 열흘 치 식량이 든 15킬로그램 되는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8월 9일 16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205)' 정상에는 메스너와 그의 그림자뿐이다. 정상은 '고독에 대한 불안과 고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 화해한 것인지도 모른다.(192)' 그곳에서 메스너는 처음으로 흰 고독을 체험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등지고 혼자 오르는 게 아니다. 이렇게 여기 앉아 있으면 나는 산의 일부가 된다. 때문에 어떤 행동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미끄러져서도 안 되며 눈사태를 일으켜서도 안 되며 크레바스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나는 여기 쌓여 있는 눈과 바위와 구름의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철학이 필요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죽음까지도 이해하게 되니까.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165)
8월 11일 오전 다섯 시. '날씨가 아직 별로 좋지 않았으나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228)' 텐트, 침낭, 버너와 식량도 모두 버리고 내려가기로 했다. '배낭에는 서너 통의 필름과 카메라, 고도계 그리고 색안경 등 자질구레한 것만 남겨 두었다.(228)' 오늘 안에 베이스캠프까지 가려고 새로운 루트로 하산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하루 만에 내려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해 놀라면서 축하를 했다.
1986년, 로체를 끝으로 매스너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8천미터 봉우리 14좌를 모두 무산소 등정했다. 1944년생인 매스너는 60세인 2004년 고비 사막도 횡단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유럽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정상에 섰다고 '고독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 여전히 고독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 점이 또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248)'이라고 한다. 고비 사막을 횡단한 후 "잘 늙는 것은 아직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도전"이라고 했다.
높은 산에 올라 흰 고독을 느낄 깜냥도 안되니 곱게 잘 늙어가는 것에 도전해야겠다.
검은 고독 흰 고독Die weiße Einsamkeit, 2003/라인홀드 메스너Reinhold Messner/김영도 역/필로소픽 20131025 272쪽 14,500원
덧. 1978년 6월 30일 뮌헨 림 공항을 떠났는데(54쪽), 6월 12일 오전 열 시 우리는 차로 라왈핀디를 떠나 이동(71쪽)한다고 했다. 날짜 오류인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