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 시인이란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 어떤 문장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걸고 몸부림치는 존재 아니던가. (12)
  • 이 별의 특산품은 무언가요, 물어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눈물입니다." 우리가 눈물의 종족이듯, 그 말에 따르면 이 푸른 물방울 행성은 신의 눈물방울일 가능성이 높다. (23)
  • 싸움 마무리의 욕설은 끝이 길기 마련이다. 마지막 욕을 내가 하고 가야 이긴 것 같기 때문. (49)
  • 훌륭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단순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만 있을 뿐이다. 최소한 이게 평화다. 전쟁이 나면 우리는 지난 시절의 무료한 일상을 평화였다고 말한다. (65)
  • 사람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 내가 죽을 때 바다를 닮은 얼굴이 되어 있다면 좋겠으나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빈 술병이라도 닮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어떤가. 혹시 비씨카드나 돈의 얼굴을 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본 적이 없으신가. (77)
  • 꿈과 가난은 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가지다. 이룰 수 있다면 그게 꿈이겠는가. (87)
  • 내가 할 수고를 누군가 먼저 했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다. (127)
  • 삶은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수준에서 전 세계를 낯설게 느끼기까지의 과정'이다. (132)
  • 아침에 깨어난다는 것. 잠 속에 빠져 있다가 문득 돌아와서 어제 했던 짓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작 이런 것이다. (261)
  • 인간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과거를 궁금해하는 종족이다. (316)
  •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너 참 오랜만이다.' 길바닥에는 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331)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한창훈/문학동네 20140814 352쪽 15,800원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 상스러운 성장기, 결국 육지로 돌아가는 항해일기에는 술과 사람과 바다가 있다. 푸른 물방울 행성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다 비씨카드나 돈의 얼굴을 닮아가며 무료한 일상을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술이 있다. 죽음과 마주하여 소주 한 사발을 마시는 팔경호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전작인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가 사연 많은 해산물로 차린 식단이었다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술상에 오른 파란만장한 바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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