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정한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영국의 재야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이 펭귄 출판사(Penguin Books)와 데버라 립스탯(Deborah E. Lipstadt)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시작합니다.
데버라 립스탯은 미국 역사학자로서 《홀로코스트 부정하기 Denying the Holocaust》를 영국의 펭귄 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책은 1993년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을 때는 호평과 함께 시선을 끌었지만, 이듬해 영국에서 출간되었을 때는 그해 판매 부수가 2,088부에 불과했습니다.
1996년 7월 어빙은 출판물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국 법정에 제소합니다. 미국에서 명예훼손소송은 원고 측에서 피고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지만, 영국은 반대로 피고가 원고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역사 왜곡을 한 어빙이 아니라 립스탯이 쓴 글이 진실임을 밝혀야 합니다. 재판은 시작도 하기 전에 어빙에게 유리한 형국이었습니다.
'어빙이 전개한 논지의 핵심은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므로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따라서 자신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는 것'1이었습니다. 어빙이 이기면 영국 법정이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공인하는 꼴이 됩니다. 변호인단은 '문서가 아닌 정황 증거들만으로는 홀로코스트를 증명할 수 없다는 어빙의 논리 그대로 어빙의 주장을 반박'2하여 어빙이 역사적 증거들을 왜곡하고 조작했다는 판결을 끌어냅니다.
공식적인 문서로 공격하는 어빙에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상처받게 하지 않으려고 직접 증언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합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 수기 중 진짜는 작가가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다는 사실에 의존해 자신의 기억을 문서 자료와 대조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는 반면, 가짜는 그 과정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더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는 역설'3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부정을 유럽 대륙에서는 형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영국과 미국에서는 학문의 표현과 자유를 우선시하자는 분위기입니다. 2005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된 어빙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이때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어빙의 석방을 촉구하며 연판장을 돌렸는데 고소당했던 립스탯도 서명했습니다. 홀로코스트 부정에 대한 법적 규제와 학술적 토론은 나치의 점령하에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로 보입니다. 어빙은 13개월을 복역하고 집행유예로 석방됐습니다.
우리 곁에도 어빙 같은 역사 부정론자가 있습니다. 지만원은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북한의 특수부대가 투입됐다고 선동하고 전두환은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부인합니다. 박유하(제국의 위안부)나 낙성대경제연구소(반일 종족주의) 같은 무리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라는 입장을 반복하는 일본 정부의 왜곡과 역사 부정에 동조합니다. 반인간적인 범죄와 민주화 운동을 부인하는 행위는 어서 법으로 규제를 해야 합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판결까지 부정한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 임지현, 《기억 전쟁》, 휴머니스트, 2019년, 43쪽
- 같은 책 46쪽
- 같은 책 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