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20세기사

르몽드 20세기사
  • 1944년 8~9월에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막 해방을 맞이한 파리 시민들에게 어떤 국가가 승전에 가장 많이 기여했는지 물었다. 응답자의 61%가 소련, 29%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60년 뒤 같은 기관에서 동일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미국이 58%, 소련이 20%를 차지했다. (4)
  •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약 140차례의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중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5차례의 주요 분쟁으로 100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1939년 이전에 20여 차례였던 분쟁이 1945년 이후에는 100여 회에 이르렀다. 새롭고 더 값비싼,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가속화된 '진보'로 인해 인간의 자기결정권은 계속해서 침해받고 있다. (16)
  • 2009년까지 일본, 이탈리아,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명백한 주범이었다. 그러나 유럽의회는 8월 23일을 '추모의 날'로 지정하면서 다른 관점의 결정을 내렸다.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했던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전쟁 책임자로 규정한 것이다. (48)
  • 냉전체제 고착 시도가 가장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서구 열강도 여기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바, 그들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의 기준을 세웠고, 이 지역의 천연자원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제적 이윤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에는 무관심했다. (82)
  • 1984∼85년 광부들의 파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분쟁이었다. 당시 파업은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의 충돌이라기보다 내전에 가까운 양상을 띠었다. 파업 규모와 기간, 영향력 차원에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파업 사례로 남아 있다. (98)
  • 20세기는 자유주의 질서가 마침내 전 세계에 자리잡은 시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수한 투쟁이 벌어진 무대이기도 하다. 애당초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음에도 투쟁을 통해 민중의 열망은 승리를 거두었다. (107)

르몽드 20세기사L'Atlas Histoire : Histoire critique du XXe siècle, 2010/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Le Monde diplomatique/이상빈 역/휴머니스트 20141006 136쪽 22,000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병사의 비율은 프랑스인은 200명 중 한 명, 미국인은 500명 중 한 명인데 비해, 소련인은 22명 중 한 명꼴이다.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도 유럽 서쪽보다 동쪽에서 10%가 넘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다. 그러나 2009년 유럽의회는 1939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을 근거로 독일 나치즘과 함께 공산주의를 전쟁의 책임자로 규정했다. 유럽의회의 결정은 '냉전에서 이긴 진영이 기억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으로 발전된 역사 해석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1915~1918년, 20세기 최초의 대량 학살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로 100만 명가량이 숨졌다. 프랑스가 1955~71년에 카메룬에서 저지른 유혈 참사로 희생자가 7만~12만 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베트남은 1946~75년까지 20세기에 가장 길었던 전쟁에서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당대의 승리자가 작성한 역사 교과서는 마치 민중에게 "이를 악물라"고 독려하는 듯하다. 교과서에서 그들은 민중에게 평화롭게 잠들라며, 묵묵히 고통을 견디라며, 또 파리코뮌, 대장정, 국제여단, 로자 파크스, 식민주의 반대투쟁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종용한다.(5)' 책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광기와 암흑, 적색과 회색의 20세기에 관한 41개의 민낯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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