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루야 잘 가렴
머루(20110906~20210303) |
너는 강쥐일 때 유기견이 됐다가 인연이 닿아 우리 집으로 왔다. 머루라는 이름은 유기견센터에서 부르던 이름이었지만 네게 잘 어울렸다. 엄마는 슈나우저인데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며 놀려서 미안하다. 어머니가 널 아들로 삼아서 졸지에 나는 네 형이 됐다.
말썽 한 번 피지 않았고, 대소변을 화장실에서 가리는 영특함을 보여줬다. 너보다 한 살 어린 우박이랑 싸워서 번번이 졌지만 승복하지 않고 나와바리를 지키려는 꼬장도 보여줬다. 오랜만에 봐도 항상 반겨줬고, 다른 식구랑 자다가도 오줌을 누고 유독 나를 깨우며 간식을 달라고 했다. 가끔 혼술할 때 곁에 엎드려 안주발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는 눈빛으로 내 얘기도 들어줬다. 내가 드나들 때마다 거의 유일하게 아는 척을 해준 유일한 생명체였다.
어려서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꿋꿋하게 이겨내서 병원에서는 장수할 거라고 했다. 황급히 아파질 줄 몰랐고, 황망히 떠날 줄 몰랐다. 어제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더라. 매화꽃이 피고 눈 내리면 유독 네 생각이 날 것 같다. 난 괜찮으니 넌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더 행복하여라. 그 별에서 만날 때 아는 체나 해주렴. 머루야 잘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