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학벌은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의 배후에서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학벌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Hakbul society라고 명명할 때, 사회학적 측면에서 그것은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말한다. 정치학적 측면에서는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학벌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이루어지는 파당적 요소로 분배되는 붕당(朋黨)적 사회를 뜻한다.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한 사회가 생산해내는 부와 권력을 소수 학벌집단이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를 통해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독과점사회를 말하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 형성이나 결혼,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를 의미한다.
학벌사회는 좀더 일반적인 개념인 학력사회credential society와 구별된다. 학력사회가 학력 즉 제도권 교육의 이수 연한 정도에 따라 증명서를 발급하고 이에 의해 사회적 차별이 이루어지는 사회라고 한다면, 학벌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을 넘어 문화적 봉건성과 맞닿아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즉 학벌이란 아직 개인 중심의 시민사회가 정착되지 못하고 집단 소속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위상이 정해지는 집단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수 현상이다. (15)
이십여 년 전 얘기지만 지금은 더 공고화됐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하나의 권력이자 신분이며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9)'. 지식인은 학벌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이 학벌사회의 수혜자들이 됐다. 몇몇은 오히려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두둔하고 있다.
책은 대학평준화나 대학입학추첨제와 같은 혁명적인 방법을 언급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사적·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결정과정의 배후에 학벌 카르텔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변화의 동력은 시민이다. '섣부른 사회주의적 전망의 접합이 가져올 허망함에 대해서도 경계(158)'하라지만 더 망가뜨릴 것도 없어 보이는 지금이 파괴해서 재창조할 적기이지 싶다.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김동훈/책세상 20010415 182쪽 4,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