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종 그리고 기억
19851223 Toni Morrison |
형편없는 구분이긴 하지만 여성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페미니스트, 반페미니스트 그리고 중립적 인도주의자다. 각 집단은 적어도 한 집단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의를 보인다.
페미니스트는 의식 수준을 충분히 끌어올려 여성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며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현대 페미니스트는 격렬한 성적 억압을 자본주의 탓으로 돌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와 남성 탓으로 돌린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분열됐다.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 모두 여성들 사이의 배신이 소수 집단의 자기혐오와 결혼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나오는 잔여물이라고 생각한다.
반페미니스트는 정치, 경제, 문화 제도가 남성을 성실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난봉꾼은 되지 않도록 관리한다면 그 제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페미니스트의 공산주의와 무신론을 비난하는 반페미니스트는 남성의 가장이자 아버지 역할이 문명사회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과 비슷한 활동을 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중립적 인도주의자들은 세 집단 중 가장 큰 집단이다. 페미니스트와 반페미니스트는 수를 늘리기 위해 이 집단을 유혹하지만, 이들은 양쪽으로부터 경멸과 불신을 얻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의 성과로 득을 보지만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아 이 집단을 방해자나 기회주의자로 본다. 반페미니스트는 이들이 겁쟁이이며, 보호주의가 달면 삼키고 쓰면 노골적으로 뱉으며 부당 이익을 취한다고 생각한다. 중립적인 여성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공격적인 태도를 부끄럽게 여기고, 매력이 없으며 남성처럼 생각한다. 반페미니스트는 말투가 우습다고 여기며 무지한 종교적 광신자이거나 노예근성이 충만하다고 본다.
세 집단의 분열은 씁쓸하지만 실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성향을 가진 여성이든 생리적 속박은 매매나 교환의 수단으로 삼도록 강요받는다. 즉 자녀를 위해 한 계층으로서 보호를 요구한다는 의미다. 끈질긴 남성 우월주의는 진영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여성들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킨다. 남성은 여전히 이 사회의 과학, 정치, 노동 목표를 결정한다.
정치는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반동적인 여성 지도자에 대한 변명은 좌파에게 맡겨져 있다. 인력 시장에서 남성의 통제력으로 여성은 종속적인 위치로 인해 가장 쉽게 처분이 가능한 노동자가 된다.
인간 생리와 편협한 사고는 여성의 오랜 적이다. 여성은 오래전부터 이 두 가지를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한 표적으로 삼아왔다. 최근 들어서는 방해 공작을 하는 여성의 증가로 해로운 현상을 보인다. 최악의 경우 여성에 의한 여성혐오는 내부 붕괴에 근접하거나 최소한 좌절감에 머물게 할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 무의미한 머리채 싸움으로 끝날 것이라는 남성의 저열한 기대를 충족할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는 생식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성차별 문화는 인종차별과 계층 간의 위계질서라는 사회생식기적 구조(socio-genital formation)가 있다. 남성 우월주의가 만든 인종차별이 성차별보다 중요도가 낮다고 치부하면 남성 우월주의를 지탱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분열시킨다. 계층 불평등은 남성이 꾸며낸 인식 차이로 여성 간의 싸움을 부추긴다. 두 가지 모두가 절단되면 남성 우월주의는 무너지고, 여성들 사이의 다툼도 없이 존엄하고 책임 있는 여성해방운동이 부흥할 수 있다.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이 1989년 5월 8일, 뉴욕 퀸스 대학교에서 한 강연(Women, Race and Memory)1을 짜집기한 것이다. 무려 한 세대 전에 한 강연인데 지금 우리가 겪는 갈등을 오래전에 예언한 것 같다. 페미니즘, 인종차별과 계층 불평등에 관해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둔다.
- 토니 모리슨, 《보이지 않는 잉크》, 이다희 역, 바다출판사, 2021년, 343~3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