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공급자는 홍익소문으로 뒤덮어라

media control

어떤 미디어가 있다. 거기서는 오른손잡이가 명백하게 밝혀진 비리나 범죄가 있을 때만 마지못해 언급하고, 모든 사회 부조리나 의혹은 모두 왼손잡이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단정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거나, 일주일에 120시간을 일하자거나, 부정식품 선택의 자유라거나, 건강한 페미니즘이나,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거나,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거나, 사과는 개나 주라거나, 식용견은 따로 있다는 보도는 웃음거리로 치부하며 스치듯 지나간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 거리두기를 하자면 자영업자가 죽는다고, 백신 접종률이 낮으면 백신을 확보 못했다고,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면 백신 부작용이 있다고, 부동산 개발업자들 이익이 많아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자고 하면 민간이익을 제한하지 말라고, 이 모든 것은 왼손잡이 때문이라는 표제 아래에서만 보도한다. 왜 이러는 걸까?

오른손잡이가 저지른 의혹이나 망언은 축소하거나 실언, 실수, 구설수라고 해명하며 옹호한다. 오로지 왼손잡이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만든다. 늘 같은 주제와 논조를 인용하고 반복하며 되새김질한다. 주야장천 왼손잡이에 관한 의혹만 침소봉대해서 보도한다. 어떤 맥락인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또 다른 사건으로 넘어간다.

이런 서사는 하루아침에 만든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 자로 잰듯한 중립을 가장하며 지속해서 반복한다. 왼손잡이의 이미지를 부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다는 잘못된 통념을 만들어 각인시킨다. 왼손잡이는 대처할 방법을 모른다거나, 대처할 시간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을 단 하나의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춰 시각을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혹의 사실을 찾는 척하면서 오히려 의혹이 해결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런 미디어만 접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이 작아지며 감정이입을 한다. 만들어진 이야기와 평가에 의지하게 된 사람은 급기야 왼손잡이를 혐오하고 증오하게 만든다. 각인은 위해를 가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왼손잡이에 대한 혐오를 공급하는 것, 이것이 숨겨진 진짜 목적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가고,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 혐오는 사소한 비난으로 시작하지만 끝내 악담하며 외면하고 적대시하게 만든다. 미디어를 가장한 혐오 공급자를 방관하거나 관망하는 것은 혐오 공급을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혐오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혐오 공급자에 대항하는 방법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다. 혐오 공급자는 질식사할 정도로 홍익소문으로 숨 쉴 틈 없이 뒤덮어야 한다. 힘은 사람들이 함께 행동할 때 생겨나고, 사람들이 분열할 때 사라진다. 홍익소문, 지난한 길이지만 가야 할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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