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 지금까지 미국 대선 역사상 트럼프는 가장 충격적인 블랙 스완1이었다. (32)
  • 트럼프는 이 문명 충돌론의 시대 분위기를 타고 과거로 가는 역주행의 대변자에 불과하다.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적 정치와 문화, 타자에 대한 폭력적 정서가 강화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서구 문명의 배타적인 블록이 강조된다. 1930년대의 미국은 자신감을 가진 상승기였기 때문에 파시즘이 아니라 뉴딜을 택했다. 하지만 오늘날 하강하는 미국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더 나아가 지구 환경 파괴 문제는 경쟁의 격화 및 새로운 파시즘의 토양이다. 트럼프의 파시즘에 대한 충동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34)
  • 사실 오바마보다 트럼프가 미국 체제의 누적된 위선을 더 잘 드러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44)
  • 미국 체제의 작동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미국이 때로는 엘리트들의 음모와 때로는 엘리트들의 바보 같은 착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45)
  • 나는 트럼프를 포퓰리즘의 유형 이론에 근거해 '반동적 포퓰리즘'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반동적이란 시대의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담론이란 의미다. (47)
  • 애런 제임스는 2016년 출간한 《개자식-도날드 트럼프 이론》에서 트럼프의 성격 유형을 개자식 이론으로 개념화했다. 이는 저속한 비난이 아니라 진지한 학문적 개념 정의다. 제임스에 따르면 개자식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아주 일관되게 자신의 특권을 추구한다. 둘째, 자신은 애초부터 특별한 자격을 지닌 인간이라는 왜곡된 관념에 의해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다른 이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고 사과할 줄 모른다. (56)
  • 남성 사춘기의 충동성과 폭력성에 자본주의의 부정적 기질이 결합한 셈이다. 제임스는 이를 '개자식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58)
  • 당적을 떠나 클린턴, 부시 2세가 제국의 번영에 대한 낙관주의 계보라면 오바마, 트럼프는 제국의 퇴조에 대한 비관주의 계보다. 전자가 현상 유지파라면 후자는 혁신파다. 단, 혁신의 강도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65)
  •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토박이들이 중시하는 가치와 삶의 태도가 낡은 것으로 부정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소수계 이민자들에게 분노를 쏟아 내고 있다. 지금 보수적 백인 남성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만이 아니라 잠자던 거인인 히스패닉이 깨어나자 공포에 몸을 떤다. (99)
  • 트럼프의 정치 운명은 4년의 임기로 끝날지 모르지만, 트럼프주의 현상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과 새로이 주류로 등장하는 히스패닉 등의 상승세, 신진보주의적 가치의 득세가 존재하는 한 소수화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필사적인 반격은 불가피하다. (102)
  • 사실 철저한 자기애로 뭉친 '개자식' 트럼프의 특징은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금권 사회의 결과이다. 트럼프는 공화국 파괴의 원인이 아니라, 누적된 파괴의 결과이자 완성이다. (120)
  • 다음번에 등장할 파시즘의 흐름은 사람들을 가축처럼 나르고 강제 수용소에 집어넣는 형태가 아닌, 친근한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126)
  • 트럼프는 단지 권위주의자라는 규정으로는 5퍼센트 부족하다. 파시즘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논쟁이 존재한다. 나는 핵심 문제의식과 스타일에서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규정한다. 즉 트럼프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워지는 디스토피아와 미국 퇴조기의 불안감을 타자에게 전가하고 적에 대한 폭력에 매혹을 느끼는 이들을 적극 동원한다는 의미에서 파시즘의 미학에 가깝다. (127)
  • 한국 사회는 보수나 지보를 막론하고 질문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 과거에는 개발 도상국이라는 콤플렉스에서 선진국의 답을 조야하지만 치열하게 모방하기도 했다. 이제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에 무지하고 세상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잃으면 트럼프 이후에도 계속 닥쳐올 블랙 스완 현상 속에서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다. (145)
  • 우리는 이미 현존하는 미래와 대화하고 새로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154)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안병진/스리체어스 20190318 165쪽 12,000원

블랙 스완처럼 당선된 개자식 자본주의의 전형이었던 트럼프가 낙선했다. 정권이 교체됐어도 트럼프로 인해 도드라지게 드러난 누적된 위선과 트럼프 지지자들로 인해 미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가 미국 붕괴의 원인이 아니라 완성이라면 연방해체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태평양 건너 천조국과 트럼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블랙 스완 같은 개자식이 또 대통령이 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할 일이다. 대통령은 시대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1. 블랙 스완(Black Swan)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용어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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