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 송경동

송경동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목으로 부산구치소 0.7평 독방에 갇혔을 때 비로소 자유의 참맛을 알았다. 하루 세끼 변기통에서 식기를 세척하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소박해지고 깨끗해졌다. 하루 사십분 창살 틈으로 들어왔다 가는 '다람쥐 꼬리'만 한 햇빛에 얼굴을 내밀어 해바라기하는 일이 놀라운 일이었다. (...)

악독하고 비참한 일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그보다 더 존엄하고 아름다운 일들로 가득찬 게 이 생명의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는 '절망'일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창비 20160222 176쪽 8,000원

가장 가파른 곳에 서본 사람들은 안다
관념보다 귀한 게 물질임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는 것인지를1

신고만 받고 AS는 단 한 번도 안하는
저 국가에는 항의도 못해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낡아간다2

이기고 지는 것만이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삶의 시간들3

더이상 이 모욕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4

사랑은 한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5

이 위대한 국가가
오늘 기를 쓰고 밀어내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내일임을 고마워하자6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의 자리를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넣었다7

제국주의가
포탄으로 이룬 세계화를
우린 사랑과 연민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이룰 것이다8

내 삶의 저작권도
실상은 내게 있지 않다9

일을 할수록 더 빈곤해지는
나이도 먹기 전에 쓸모없어지는
죽어서도 생계나
공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동물들 이야기10

다시 돌멩이를 들지 않고
다시 스크럼을 짜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11

세월이 흘러도 양철북처럼 키가 자라지 않는 당신께
참 쓸 수 없는 시 한편을 쓴다12


송경동 시인이 한가하게 종일 하품하는 세상이 어여 오길 바랍니다. 시인이 지칠 틈 없이 행복하길 빕니다.


  1. 뻰찌 예찬
  2. 국가, 결격사유서
  3. 사적 유물론
  4.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5.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6. 법외 인간들을 찬양함
  7.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8. 나비효과
  9. 저작권
  10. 공장은 무덤을 생산한다
  11.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12.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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