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촛불정부는 실패하였는가?

문재인

문재인은 실패했다. 아무리 성공으로 포장해도 다음 정부를 물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키운 건 8할이 문재인이다. 검란을 진압하지 않았다. 검찰개혁을 한다며 난리 쳤지만 오히려 검찰정권을 만들었다. 역사상 가장 허약한 후보에게 0.7퍼센트 차이로 정권을 내줬다. 박빙으로 패한 것이 아니라 박빙으로 차이가 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혁명은 빈곤, 부정부패, 변화 열망이 있으면 일어난다. 무려 부정부패와 변화 열망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 만든 촛불 혁명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새로운 시대란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혁명 전과 혁명 후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적폐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아니었다. 둘은 위법했다. 문재인은 그 뒤에 숨은 적폐를 단죄는 고사하고 드러내지도 않았고 그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마르쿠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에서 "진정한 문제는 민중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게 아니라, 장면 정권이 민중의 변화 염원을 배신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자신을 지지한 민중의 개혁 요구를 배신하면서 지지 기반을 상실해 결국 의회 쿠데타에 직면했던 노무현이 있다."1고 했다.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노무현은 의회 쿠데타로 실패했고, 문재인은 사법 쿠데타로 실패했다. 또 당하면 당한 당사자가 바보다. 장면 정부가 혁명의 염원을 배신할 때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진보 진영에서도 박수를 쳤다고 한다. 왜 정권교체라는 여론이 절반을 넘었는지 두고두고 반성해야 한다.

문재인은 최고와 최악의 시기를 동시에 보내며 확고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검사, 판사, 의사에 굴복했다. 슬그머니 자본에 기생하는 기득권층과 편을 먹었다. 확고한 지지자는 학습을 통한 성장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촛불에 대한 배신이라고 부른다. 장면 정부를 위해 피를 흘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에 안주하며 촛불을 든 사람의 염원을 배신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차별금지법, 국가보안법, 부동산법에서 보인 태도가 그 증거다. 촛불 지지자들을 향했다면 지금 없어졌거나 만들었어야 할 법이다. 문재인이 당선하고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변변한 개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문재인과 민주당이다. 무정치에 가까운 문재인의 침묵과 180석을 갖고도 변화를 만들지 못한 책임이 지금의 결과로 나타났다.

바야흐로 사법의 시간을 만들었다. 모든 정치가 사법 앞에 무릎을 꿇고 처분을 기다린다. 문재인은 검찰총장의 위세를 누를 권위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해외에서 격찬하던 방역조차 처분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에 세상을 변화시킬 줄 알았던 촛불정부는 자본과 기득권에 기생하며 시민의 억압과 착취를 먹고 산 검찰과 사법에 침묵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재인의 과오다.

또한 코로나 시대는 분배와 복지에 대한 생각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라면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정책을 펼 절호의 기회였다. 문재인 정부는 엄두조차 내지를 않았다. 오히려 외면했다. 재벌은 풀고 노동은 가두는 최저임금과 노동정책이 증명한다. 평소 밝혔던 소신대로 상상도 하지 못한 변화를 추구해야 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애쓰질 않았다.

김경수와 정경심을 사면복권하지 않았다. 지조인지 눈치를 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과감한 결단을 못했다. 천안함의 진실은커녕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밝히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기업과 4대강 수중보는 그대로다. 한마디로 문재인은 검란에 침묵하며 집권 전반기에는 김정은과 악수만 했고, 후반기에는 마스크만 쓰고 말이 없었다.


  1. 한규한 외, 《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책갈피, 2018),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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