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수선된 국어대사전을 본 의뢰인이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합니다. 동화책에 있는 낙서가 기억이고 추억이 되어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책이 됩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품인 도안집을 수선하며 표지에 동백꽃을 넣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 책이 남아 있고 그 책이 수선을 필요로 한다면, 책 수선가로서의 나의 기술과 감각이 남은 이들의 저민 가슴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온기가 되기를, 또 그 온기가 떠난 이와 남은 이의 추억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기를(83)' 바랬기 때문입니다.

새 책을 만드는 일도 그렇지만 책을 수선하는 일도 많은 단계를 거칩니다. 어떤 책은 49단계나 필요했습니다. 재영 책수선은 '옷 수선, 구두 수선처럼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184)'이 작지만 큰 욕심입니다. 천자문을 써 내려간 할아버지의 '마음이 살아갈 책의 집의 짓는 것, 어떤 풍경을 가진 집으로 만들지 종이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상상하고 손에 잡히는 책을 만들어내는 일(203)'을 합니다. 평생을 함께하고 아낄 책이라면 정성을 담아 주인과 닮은 반려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수선을 의뢰한 책에서 나오는 오래된 봉투를 조심스럽게 수선하는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씹다 버린 껌을 싸놓은 이 포장지도 어찌어찌 운이 좋게 살아남아 수 세기가 지난 후 미래의 어느 지류보존가로부터 몇 년 경의 어느 회사의 껌 포장지인지 분석당하며 조심조심 수선을 받을지도(234)' 모르기 때문입니다.

책 수선가는 망가진 책의 기억을 관찰하고,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합니다. 책 수선가는 훼손된 부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관찰하며 축적된 시간의 흔적에 매료됩니다. '종이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책 수선가는 점점 더 많아져서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오랫동안 튼튼한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327)'겠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다는 저자의 트윗을 보고 "약 13년 8개월 후에 이 책을 수선하려고 들린 독자분들과 만나는 상상을 했다"는 축하의 답글을 달았습니다. 아 참, 재영 책수선은 책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망가진 종이들을 환영한답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재영 책수선/위즈덤하우스 20211124 328쪽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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