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록 산책

그럴수록 산책
호시절은 언제일까요? 과거형인 거로 봐서는 지금이 호시절인지도 모릅니다. 꿩은 먹을 것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오후 네 시가 되면 숲으로 돌아간다는데 인간도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립다며 꼽은 곳들은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있었던 곳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남긴 발자국에 흙이 쌓여서 어느 날 풀이 자라고 꽃이 필 거란 사실을 모릅니다. 우리는 원치 않는 타인과 함께일 때 가장 고독해집니다. 행복한 기억 외의 다른 건 모두 언젠가 어이없을 정도로 의미가 없어지니까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걷다 보면 뽕나무에 달린 오디가 익어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냐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공기가 이동한다는 바람은 신기합니다. 세상이 균형을 맞추려는 큰바람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묘해집니다. 바람이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있는 건 민들레 홀씨일 겁니다.

걷다 보면 산책세밀관찰자가 되어 쥐며느리도 저마다 성격이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이불을 벗어나자는 결심을 하면 5시간 정도 후엔 나갈 수 있습니다. 순록이 피자 배달을 거부한 것처럼 게으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량이면 어떻습니까? 세상이 못 알아보지만 제 모습을 찾는 순간은 올 겁니다.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아질까요. 걷다 보면 산책길에 가끔 햇빛이 떨어져 있어도 내 것이 아니어서 줍지 않는 내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요. 도대체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럴수록 산책/도대체/위즈덤하우스 20210430 208쪽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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