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그러나 시대마다 존엄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애인을 비롯해 시대마다 불화하는 존재들은 '불구'라는 낙인으로 차별받았다. 장애여성은 몸의 차이로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장애여성의 경험과 위치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존재를 일깨우며 정상성을 강요받는 다른 몸들과 만난다. 그리고 불구의 존재들과 함께 폭력적인 운명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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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존재들을 선별해온 국가는 정상적인 국민과 비정상적인 국민을 구분하며 불평등을 유지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장애인과 이주민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군형법의 추행죄,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우생학 등 법과 제도로 장애와 몸, 빈곤,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등을 기반으로 한 차별을 양산하고 국민과 비국민에 대한 불평등과 억압을 조장해 왔다. 사회와 국가는 온전하지 못한 기능이나 스스로 구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불구의 정치가 피어난다.
나답게 살 수 없는 시대다. 세상의 속도와 가치에 맞추어 능력과 상품성을 갖추는 자기계발이 미덕인 시대에 차이는 단지 무능이 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타인의 삶에 다가가기에 관계는 삭막해졌다. 서로에게 기대는 관계는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듣기 쉽다. 아프고 장애가 있는 몸들은 의존적이고 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구분되어 골방이나 시설에 가둬졌다. 그러나 장애의 경험은 성장과 개발이 보편인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남다른 감각이다. 온전히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돌봄에 기대 살아간다는 진실을 몸으로 보여주며,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 아프고 늙은 사람을 돌볼 것이라는 믿음에 도전한다. 그러나 독립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번번이 꺾였고 존엄보단 쓸모의 증명을 강요 받아왔다. 우리는 긴 시간 겪어온 부당한 경험이 개인의 불운과 능력의 결과가 아님을 정확히 알고 있다. 권리를 박탈 당하고 자원이 없는 이들이 독립에 도달하지 못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의존과 돌봄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
정체성은 계속 변화한다. 장애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제당하거나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쉽게 성적 폭력과 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참혹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국가는 엄벌주의를 내세워서 취약한 여성들을 보호하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왜 이러한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지 알고 있다. 폭력은 구조적 차별에서 자라나며, 성적 위계에 따라 다르게 매겨지는 존재의 가치를 뒤집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보호가 아니라 권리를 요구한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성적 자유와 결정을 가로막는 장벽에 도전하고 역량을 박탈하는 구조에 맞서 싸운다. 사회를 향해서 장애인에게 성별정체성과 성적 권리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여성 안에도 몸의 차이와 위계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이 여성의 경험을 단일화하면서 장애여성의 관점을 무시하거나 누락하는 것을 비판한다. 우리는 페미니스트이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연대하는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공감은 연대의 시작이다. 살아남기 경쟁에 내몰리며 잊고 있는 감각일지라도 사람들은 공감받고 공감하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공감은 "희망을 가지세요" "당신을 보니 희망이 생겨요"처럼 동정하는 마음이 아니다. 또한 여성, 장애인, 장애여성, 소수자 등 우리의 정체성에 기반한 운동은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정의와 범주, 생물학적 정체성이 정치적 입장의 동일함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이질적인 존재들의 마주침과 뒤섞임, 흔들림 속에서 끝없는 질문과 토론이 공감을 가능케 한다. 우리는 중심을 향하기 보단 사회의 주변부에서 차이를 이해하고 발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각자의 경험에서 서로의 삶과 운동을 배우고, 사회적 차별을 해석하는 힘을 익혔다. 반복되는 사회의 거절과 친구의 죽음, 지켜지지 않는 국가의 약속과 폭력 속에서 역설적으로 공감하는 힘과 맞서 싸우는 연대를 터득했다.
실천의 현장에서 장애여성공감은 20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도전하고 시도해왔다. 성폭력상담소와 독립생활센터를 기반으로 성폭력과 독립이라는 주제의 활동을 엮어냈다. 장애와 반성폭력이 교차하는 담론을 형성하는데 집중하며,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사회적으로 알려나갔다. 장애인 IL(Independent Living)운동을 젠더관점으로 재구성하며 장애인 운동을 확장시키고자 했다. 이상화된 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몸과 인권현실을 알려내는 것은 주로 문화운동의 형태로 펼쳤다. 무대 위 불균형하고 위태로운 몸짓은 그 자체로 정상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발달장애여성의 목소리는 합창단 일곱빛깔무지개로 모여 직접 노랫말을 쓰고 집회와 문화제를 찾아 공연했다. 이들의 노래와 활동은 발달장애여성의 관계와 삶의 조건에 대한 복잡한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축적된 활동과 담론을 사회와 나누는 것은 무겁지만,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성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인권교육, 교육연극으로 수많은 대중을 만나며 인식을 변화시키고, 의견을 듣는 시간을 쌓아왔다. 연구정책 활동은 전문가에 기대지 않고 연대활동에서 마주한 주제들과 장애여성의 욕구에 귀 기울이며 제도와 담론을 분석하는 노력을 꿋꿋이 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장애여성들의 참여와 역동으로 채워졌던 자조모임, 교육활동, 장애여성캠프, 소모임과 같은 현장 활동이 중요한 토대가 되어 왔다.
늘 타인의 보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당당한 거절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스스로 요구하여 쟁취한 권리가 제도가 되었을 때, 제도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독립성은 그래서 늘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다. 운동의 독립성은 권리로서 법과 제도 마련을 위해 싸우지만, 우리의 삶이 또 다른 사회적 규범화와 제도화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이다. 불합리한 차별을 참지 않는 질문, 권리가 아닌 시혜에 대한 거절, 제도와 불화하겠다는 선언은 존재를 당당하게 지켜내며, 장애여성운동을 진전시키는 갈등의 동력이었다.
선언은 장애여성공감이 제안하는 약속을 깊이 새기는 것이다. 불화가 불러오는 긴장은 소수자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게 한다. '촛불의 혁명'과 보편적 인권을 말하는 시대, 우리는 민주주의와 보편의 정의를 다시 묻고, 제도와 보편에서 누락된 불구의 존재의 연대로 인권의 역사를 진전시키는 노력에 동참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말하기를 멈추지 않되, 우리의 차별과 억압만이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수자들과 함께, 정상성과 보편을 의심하고 싸우는 이들과 함께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살아가고 의미있게 존재할 것이다.
2018년 2월 2일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 선언문
장애여성공감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발표했던 〈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선언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그러나 시대마다 존엄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로 시작는 선언문은 국가의 구조적 차별로 폭력이 일어남을 일깨웁니다. 이 선언을 통해 구조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싸움을 다짐합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우리는 페미니스트이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연대하는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입니다. 여성이지만 비장애인 여성들은 겪지 않거나 장애인이라도 장애인 남성들은 겪지 않은 일들을 그들은 이중 삼중의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진 억압 구조에서 오랜 경험으로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시대 담론에서 여성 문제는 항상 뒤로 밀리거나 갈라치기 당하는 마당에 장애여성들의 존재는 맨 끝줄에 있을 겁니다. 누군가 겪는 차별이 정당화될 때 또다른 누군가를 향한 차별도 정당화됩니다.
《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김지혜는 "사람들이 성소수자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이주민, 무슬림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 국가, 종교 등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므로 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은 역설적으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겪는 차별의 경험을 토론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차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12월 노무현 정부가 17대 국회에 정부안으로 처음 제출한 뒤 지지부진하다가 15년 뒤인 2022년 5월 25일 처음으로 국회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뭐든지 빠르고 빨라야 하는 나라에서 늦어도 너무너무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