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대부분의 국가가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로 죽어간다.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 붕괴는 대부분은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 (...)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1)
-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13)
-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 지금까지 두 가지 기본적인 규범이 오늘날 당연시 여기는 미국 사회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 두 가지 규범이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이해(understanding),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를 말한다. (15)
-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 ①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②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③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④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 (32)
- '집단적 포기(collective abdication)',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에게 권력을 넘기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 사회학자 이반 에르마코프(Ivan Ermakoff)가 '이념적 공모(ideological collusion)'라고 부른 개념으로, 이는 집단적 포기를 택한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86)
- 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매수하거나 무력화하고, 게임의 법칙을 바꿈으로써 권력 세계에서 중요하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들의 시도는 언제나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제주의로의 흐름이 항상 경고들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민주주의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 변화가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118)
- 헌법의 제약으로 발목이 잡힌 선동가에게 국가 위기는 민주주의 제도에 따른 불편하고, 때로는 위협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해체하기 위한 상징적 기회다. 독재자는 위기의 순간에 음모를 꾸미고, 정적으로부터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을 쌓는다. (123)
- 사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은 상원이나 선거인단 운영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견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치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그래도 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을 꼽자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 수 있다. (132)
-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133)
-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37)
-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다. 법학자 마크 터쉬넷은 이를 '헌법적 강경 태도'라고 불렀다. 이 말은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지만,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경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다. (140)
-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 둘은 때로 서로를 강화한다. 정치인이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하려 든다. 또한 경쟁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정치인은 상대를 권력 경쟁에서 퇴출시키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143)
- 정당 재편은 진보와 보수 대결을 넘어서 나타나고 있다. 정당 지지자 집단의 사회적, 민족적, 문화적 특성이 크게 바뀌면서 정당은 이제 단지 서로 다른 정책적 접근방식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 문화와 가치를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다. (214)
- 미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종종 당연하게 여기는 두 가지 규범, 즉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특권을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규범은 미국 헌법에 적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규범이 무너질 때 미국 헌법의 견제와 균형은 우리의 기대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268)
- 미국 헌법 체계는 역사상 어느 나라의 헌법보다 유서 깊고 견고하지만,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질병에는 똑같이 취약하다. 어떤 정당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끝낼 수 없다. 마차가지로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여 있다. (288)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2018/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박세연 역/어크로스 20181002 350쪽 16,800원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양당제 역사가 깊은 미국에게나 어울리는 점잖은 훈수다. 개차반이 대통령이 돼도 여태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민초들 덕이다.
덧. 알릴레오 북's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