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모든 과학 탐사가 끝난 후에야 고향을 잠시 돌아보는 위험한 응시가 허락되었다. 너무 멀어지기 직전에 건진 사진 속 단 하나의 픽셀에,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 찍혔다(153)'. 1977년 9월 5일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 오전 4시 48분, 약 64억㎞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창백한 푸른 점'을 찍는 장면을 상상하니 찡해집니다. 지금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227억㎞ 떨어진 곳을 시속 6만㎞ 비행 중이라고 합니다.

팀을 옮겼다는 표현을 연구실의 경·위도 좌표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하는 건 천문학자들의 농담인가요. 재미있습니다. 연구실에 밤늦게 있는 저자에게 당직자가 '그럼, 즐기세요!(74)'라고 인사를 한다거나, 일이 그렇게 많냐는 물음에 여기가 좋다고 답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다만, 연구원들이 연구할 시간에 물건 영수증을 챙기는 일이 사소하지 않은 현실이 씁쓸합니다. '부모 노릇도 연구자 노릇도 절반쯤만(77)' 하게 만드는 여성이 겪는 차별이 과학계도 여전해 서글픕니다.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105)'는 사회가 바삐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 또다른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96)'.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265)'. 과학자의 본분을 새기는 말이지만 누군가도 다시 되새길 훌륭한 충고입니다.

'별에서 태어나 우주 먼지로 떠돌던 우리가 이 지구를 만난 건 그야말로 우주적으로 멋진 랑데부(172)'입니다.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심채경 박사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 뜻하는 연구 결과를 성취하길 바랍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문학동네 20210222 272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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