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드는 법
-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13)
- 잘 팔리는 에세이와 좋은 에세이 사이에는 때론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둘 사이에 분명한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접점을 만들고 찾아내는 일을 나는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4)
- 책 제목을 뽑아야 하는 이 결정적 순간에는 편집자가 아니라 순수하게 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에세이 속 문장과 단어를 천천히 즐기고 필사하듯 메모하며, 각각 다른 페이지에서 발견한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연결해 보는 이 본문 탐험의 여정은 제목의 역역을 확장해 준다. (37)
- 누가 훔쳐볼까 무서운 그 실패한 제목들을 볼 때마다 제목은 편집자가 어느 날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일필휘지로 짓은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삽질 끝에 겨우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43)
- 띠지 문안은 편집자의 간판이다. 독자의 눈에 '띄지' 않으면 띠지가 아니라는 말은 그저 출판계에 떠도는 말장난이 아니다. 띠지 문안을 쓰는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든 이 책이 눈에 띄게끔, 팔리게끔 쓰는 것이다. (46)
- 책을 파는 일, 특히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작가의 경험과 삶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잊을 수 없는 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 나는 책 만드는 과정에서 그 두려움과 무게감, 그로 인한 파장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삶의 일부를 떼어 내 만든 책이 외면받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어떻게든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만들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가 힘주어야 할 일이 바로 띠지 문안 만들기다. (53)
-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싫은 것, 불가능한 것, 심지어 디자인을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근거와 방향, 대안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편집자가 아름다운 이미지를 꿍쳐 둔 자기만의 갤러리 그리고 원고와 작가를 근거리에서 관찰하며 모아 둔 아이템은 바로 이런 순간에 당신을 도울 것이다. (66)
- 보도자료는 편집자인 내가 그토록 사랑하며 완성한 이 책의 출생신고서이자 세상을 향해 띄우는 편집자의 첫 편지다. (109)
- 에세이 편집자의 사명 중 하나는 우리 곁의 생활예술인을 발굴하는 것이다. 책 쓸 생각이 전혀 없었던 생활인과 다른 장르의 예술가까지 책의 세계로 슬쩍 유혹해서 멋진 에세이스트로도 살아가게 하는 이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에세이 편집자만의 행복이자 즐거움이다. (157)
- 작가가 편집자에게 버림받으면 끝장이다! (166)
- 세상에 편집자 없는 책은 없다. (173)
- 나는 잡종 편집자다. 세상의 좋은 것과 좋은 사람을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잡종 에세이 편집자이다. 앞으로도 매일 고민하고 가끔 실패하고, 종종 잘 팔면서 나는 계속 '잡문' 편집자로 살아갈 것이다. (175)
에세이 만드는 법/이연실/유유 20210304 176쪽 10,000원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읽기 전에는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에 수많은 일손이 들어가는지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제목을 정하는 일부터 띠지와 표지를 만들고 보도자료까지 발송하는 일이 책으로 말하는 편집자의 몫임을 알았다. 편집자가 쓴 글은 남의 매뉴얼에서 뜻밖의 횡재를 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띠지 문구도 유심히 살필 것 같다.
'백발이 돼서도 교정지 든 에코백 메고 저자 미팅 현장과 서점을 누비는 현직 할머니 편집자'가 평범한 생활인을 에세이 작가로 만드는 상상을 하니 흐뭇해진다.
'백발이 돼서도 교정지 든 에코백 메고 저자 미팅 현장과 서점을 누비는 현직 할머니 편집자'가 평범한 생활인을 에세이 작가로 만드는 상상을 하니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