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시사논평 - 양극화, 극우, 좌파

알렉스 캘리니코스 시사논평 - 양극화, 극우, 좌파
  • 오바마의 당선은 엄청난 희망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사건이었다. 임기 시작부터 오바마는 그 희망을 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경 우파 경향인 티파티 운동이 오바마에 맞서 들고일어났다. 지금 티파티와 유사한 언행을 하는 후보[트럼프]가 오바마의 후임자로 취임하려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난 데는 오바마의 책임도 명백히 있다. (33)
  • 2016년에 벌어진 두 충격적 사건(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 당선)과 마찬가지로 2020년 미국 대선은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구축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헤게모니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또다시 보여 준다. 그 헤게모니는 2007~2009년 전 세계 금융 위기와 그 후폭풍 동안 불만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일자리와 집을 잃고, 소득이 줄고, 공공서비스가 삭감되면서 거대한 분노가 쌓였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의 브렉시트 추진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공화당의 성공은 정치체제를 대자본의 이해관계에서 어긋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실패한 국가"가 될지 모른다고 말하는 크루그먼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두려움은 과장일 수 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미국 제국주의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할 것이고, 군사·금융에서 미국이 가진 힘을 전 세계에 뽐낼 것이다. (59)
  • '죽음에 맞선 삶'이란 이윤에 맞선 삶인 것이다. 살아생전 자본주의가 죽음을 거래하는 체제임을 이토록 생생하게 목격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언제나 그랬다. 초기 자본주의는 노예무역과 아동노동에 의존하지 않았던가. 이제 이 체제는 이 세상에 남은 야생 생태계를 침범해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조건을 만들고 그 대가를 노동계급이, 많은 경우 목숨으로 치르게 하고 있다. 이에 맞선 투쟁은 생사를 건 투쟁이자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193)
  • 자본주의는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체제다. 자본가들은 생존하려면 착취해야 할 뿐 아니라, 이윤을 축적해 더 크고 효율적인 생산에 재투자해야 한다. 바로 이 원리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찬양한 역동성과 동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적 축적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제 위기도 낳는다. 기업은 노동 절약형 기술에 점점 더 많이 투자하는데, 이는 이윤율을 저하시켜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를 초래한다. 또한 "노동계급의 반란도 증가한다. 이 계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교육받고, 단결하고, 조직된다. 바로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작동 방식에 의해서 말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에서 협력을 증대시키지만, 동시에 생산을 실제로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착취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사용자에 맞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데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단결은 노동계급이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데 핵심적이다. (...)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단지 그의 자본주의 비판 때문만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로 나아가려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맞설 뿐 아니라 자신들을 분열시키는 온갖 형태의 차별에 맞서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211)
  •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가 결합돼 나타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를 규제하거나 인간답게 만들 것이 아니라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결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가 등장할 수 있는 진정한 역사적 조건을 밝히려 《공산당 선언》을 썼다. 또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데 필요한 투쟁이 응집력과 구심을 찾도록 도울 정치적 주체, 즉 국제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키려 노력했다. 《공산당 선언》은 더할 나위 없이 21세기를 위한 선언이다. (220)
  • 1940년대 말 클리프는 소련 사회 분석을 선구적으로 발전시켰다. 클리프는 스탈린 체제의 소련이 사회주의나 (트로츠키가 말한) "변질된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변종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라고 주장했다. 소련의 지배 관료들은 서방의 사기업 사장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 때문에 소련은 자본축적 논리(마르크스 가 《자본론》에서 규명한 자본주의의 논리)의 지배를 받았다. (...) 클리프는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을 적극 수용했다. 다시 말해, 냉전은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쟁투이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봤기 때문에, 소련이 붕괴한 1991년에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국제 자매 조직들은 성장할 수 있었다. (265)
  • 금융시장은 갈수록 효과적으로 국가 통제를 피했다. 결국,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와 계급투쟁을 배경으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은 금융시장에 대한 모든 규제를 없앴다. 지금이 이 롤러코스터에서 다 같이 내릴 기회인 듯하다. 더 또는 덜 규제된 시장 자본주의가 되풀이되는 굴레에서 벗어나 이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적 협력을 다 같이 채택할 때다. 이것은 시장을 없애는 것을 뜻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첫걸음은 자본주의를 이끄는 눈먼 경쟁을 계획경제로 바꾸는 것이 될 것이다. (281)
  •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사회주의 사회는 인류의 보편적 필요에 바탕을 둔 사회일 것입니다. 이 사회가 어떤 수준의 물질적 복지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든 그 복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일 겁니다. (287)
  • 현재 상황은 역설적이다. 자본이 약하지만 급진 좌파는 훨씬 더 약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은 경제적으로는 약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강하다. 체제에 대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확신이 강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만한 반자본주의적 대안이 약해서다. (299)

알렉스 캘리니코스 시사논평/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이정구 엮음/책갈피 20210108 344쪽 15,000원

  •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미국 제국주의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할 것이고, 군사·금융에서 미국이 가진 힘을 전 세계에 뽐낼 것이다. (59)
  • 냉전은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쟁투이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이 아니었다. (265)
  • 《공산당 선언》은 더할 나위 없이 21세기를 위한 선언이다. (220)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석학인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시사논평을 모은 글입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발표한 글을 현실과 비교하며 복기하면 의미있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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