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

Was Linke denken, 2015
  • 오늘날 '정치는 광범위하게 탈이데올로기화했다'라는 생각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중도 쪽으로 떠밀려 간 정당은 더 이상 아무런 사상도 없고, 거대한 목표도 추구하지 않는 듯하다. 정당이 선거 유세 때 내세우는 구호는 세련됐지만 가벼워보인다. (...) 탈이데올로기화의 핵심은 예전에는 좌파가 어렵고 복잡한 이론을 다룬 논문에 엄청난 흥미를 가졌으며 벽돌 두께만한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런 위대한 논쟁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 이렇게 '느낌의 좌파'는 자신이 무엇에 반대하는지만 잘 알고, 무엇을 찬성하는지는 좀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탈이데올로기화 때문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지난날 좌파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지만, 오늘날 좌파에게 이 모든 확신은 산산조각 났다. (8)
  • 좀 더 좌경이면서 정치적으로 확실한 좌파, 중도에 있는 보통 사람들, 왼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주 넓은 의미에서의 좌파'에 속한다. 좌파는 이렇게 다채롭고 이질적이다. (16)
  • 오늘날 일부 경제학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학파가 마르크스를 인류 정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인정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마르크스가 끼친 공로가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다르게 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역학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독을 막을 수 있는 면역 체계와도 같습니다. 다음 같은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부는 사적으로 생산된 뒤 거의 불법이나 다름없는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에 의해 강탈당한다'라는 주장에 너무 쉽게 빠져듭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를 공부한다면 사실은 정반대라는 점, 즉 '부는 공동으로 생산된 뒤 생산관계와 소유권을 근거로 사적으로 취득된다'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그런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31)
  • 오늘날 프롤레타리아는 더 이상 동질적인 계급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문화적으로 굉장히 상이한 여러 하위 환경으로 이루어진 다양성이 중심이 된 사회다. 즉 최하위 계급, 중위 계급, 상위 계급으로 이루어진 양대 계급 구조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혁명을 일으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사멸했다. (40)
  • 좌파에게 있어 "평등이라는 이상은 좌파가 항상 응시하고 미래에도 응시할 북극성이다." (41)
  • 정치투쟁은 사상에 대한 헤게모니, 세상에 대한 자발적인 이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51)
  • 오늘날 상당히 많은 좌파가 소수 국민이 좌파의 목소리에 동의하고 단결해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성공할 때에만 사회적·민주적 진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람시라면 '역사적 블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좌파는 사실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 좌파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거니와 같은 목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56)
  • 진보는 한편으로는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진보를 추구해서도 안 된다. 또한 "궤도에서 이탈한 모더니즘"(하버마스)도 경계해야 한다. 문명은 마치 니스 칠처럼 얄팍하고 민주주의와 계몽으로부터 얻은 성과는 항상 위태롭다. (78)
  • '커리어우먼'은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영웅이다. 그들은 위계질서를 절대 침해하지 않고 자신이 거둔 승리를 자축한다. (...)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꿈을 식민지화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우리의 이상을 전부 먹어 치우고, 우리의 이상을 통제하는 전략으로 새롭게 변질시킨다. (103)
  • 페미니즘 이론과 사고 체계는 우리가 좌파의 사고를 탐색하는 여정에 만난 참으로 경이로운 사례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이론이 가장 첨예한 소외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104)
  • 멕시코 사파타주의의 유명한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과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매우 적합한 구호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 독특하면서도 통렬한 정념을 안겨준다. 구호는 다음과 같다. "의문을 품으며 우리는 전진한다!" (165)

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Was Linke denken, 2015/로버트 미지크Robert Misik/오공훈 역/그러나 20160920 172쪽 12,000원

마르크스주의, 안토니오 그람시, 위르겐 하버마스, 미셸 푸코 등을 거쳐 현대에 이르러 포스트 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이론에 이르기까지 '좌파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한 입문서로서 훌륭하다. 《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라는 제목은 과하다. 원제인 '나는 좌파인가' 혹은 '좌파의 생각'이 적당하지만, 좌파의 생각이 상식이 되었고, 되는 것이 역사적 진전이라는 바램이라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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