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 마야문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유까딴의 어원은 다양하지만 인디오들이 원래 어떻게 불렀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마야는 남부, 중부, 북부 지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까딴반도는 북부 지방에 해당한다. 유까딴은 멕시코의 동남쪽에 있는 반도로 총면적이 180,00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한반도 면적의 2/3 정도 되는 커다란 반도이다. 유까딴은 산이 없는 열대 평원 지역으로 거의 모든 곳에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 사람들은 장수하는데, 140세에 이르는 노인도 있었다.
현재 사용하는 '마야'라는 용어는 최대한 넓게 보았을 때 유까딴반도의 상당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정복 시기 이전에는 하나의 대명사로 쓰인 적은 없다. 유까딴에는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이 있었지만, 금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퍼졌다. 이로 인하여 탐욕에 눈이 먼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으로 향하게 되었고 정복의 역사가 시작됐다.
마야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였다. 옥수수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만들었다. 외상 거래가 이루어졌고, 폭리를 취하지 않는 등 상거래 예의가 잘 지켜졌다. 수확한 농작물을 보관하는 훌륭한 곡물창고도 있었다. 유까딴 사람들은 매우 관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무척 환대해서 낮에는 음료를 대접하고 밤에는 음식을 대접했다.
마야인들은 0의 개념을 알았고 20진법을 사용했다. 마야 사람들은 천체 관측에 있어서 당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과학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다. 밤에 시간을 알기 위하여 금성과 염소자리, 쌍둥이자리를 활용했고, 발달된 천문학 지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달력 체계를 만들었다. 마야는 지금의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세,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지역에 빼곡히 도시를 세우며 번성했다.
디에고 데 란다는 16세기 에스빠냐의 신부로 초기 식민지 시대에 멕시코로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 인연을 맺었다. 란다는 원주민들과 지내며 교류했지만, 그들의 인신공양과 우상숭배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원주민을 이교도로 규정하고 많은 원주민을 고문하고 직접 화형에 처했다. 또한 수많은 마야의 책을 우상숭배의 도구로 규정하여 불살랐다. 현재 남아 있는 마야의 책은 단 세 권이 전부이다. 결국 마야 원주민을 탄압한 란다가 쓴 글이 고대 마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견문록은 계절과 지역 이름의 유래로 시작하여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을 어떻게 발견하고 정복했는지 기록했다. 건축, 종교, 음식, 역사, 생활, 경제, 문화 등에 대하여 다루었다. 특히 시간과 달력에 대하여 상당량을 할애한 부분은 마야문명에 대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란다가 쓴 원본은 유실되었고, 1616년의 요약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다.
송영복 교수가 스페인어로 된 원전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멕시코 유학 시절인 1995년부터이다. 주석과 설명을 담아 20년 후인 2014년에 탈고하였다. 본문은 길지 않지만 본문의 몇 배가 되는 각주와 해설이 덧붙어 있다. 탈고했지만 선뜻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오죽하면 "이 책이 정말 출판사를 말아먹을까요?"라며 독자와 만나고 싶다는 하소연도 했다.
에스빠냐 신부의 눈으로 마야문명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은 한국어로 된 최초의 책이다. 송영복 교수 덕분에 "지금 당장은 많이 팔리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한국어 번역과 주역, 해설본을 어디에선가는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디에고 데 란다Fray Diego de Landa/송영복 편역/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220428 448쪽 22,000원
현재 사용하는 '마야'라는 용어는 최대한 넓게 보았을 때 유까딴반도의 상당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정복 시기 이전에는 하나의 대명사로 쓰인 적은 없다. 유까딴에는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이 있었지만, 금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퍼졌다. 이로 인하여 탐욕에 눈이 먼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으로 향하게 되었고 정복의 역사가 시작됐다.
마야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였다. 옥수수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만들었다. 외상 거래가 이루어졌고, 폭리를 취하지 않는 등 상거래 예의가 잘 지켜졌다. 수확한 농작물을 보관하는 훌륭한 곡물창고도 있었다. 유까딴 사람들은 매우 관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무척 환대해서 낮에는 음료를 대접하고 밤에는 음식을 대접했다.
마야인들은 0의 개념을 알았고 20진법을 사용했다. 마야 사람들은 천체 관측에 있어서 당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과학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다. 밤에 시간을 알기 위하여 금성과 염소자리, 쌍둥이자리를 활용했고, 발달된 천문학 지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달력 체계를 만들었다. 마야는 지금의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세,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지역에 빼곡히 도시를 세우며 번성했다.
디에고 데 란다는 16세기 에스빠냐의 신부로 초기 식민지 시대에 멕시코로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 인연을 맺었다. 란다는 원주민들과 지내며 교류했지만, 그들의 인신공양과 우상숭배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원주민을 이교도로 규정하고 많은 원주민을 고문하고 직접 화형에 처했다. 또한 수많은 마야의 책을 우상숭배의 도구로 규정하여 불살랐다. 현재 남아 있는 마야의 책은 단 세 권이 전부이다. 결국 마야 원주민을 탄압한 란다가 쓴 글이 고대 마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견문록은 계절과 지역 이름의 유래로 시작하여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을 어떻게 발견하고 정복했는지 기록했다. 건축, 종교, 음식, 역사, 생활, 경제, 문화 등에 대하여 다루었다. 특히 시간과 달력에 대하여 상당량을 할애한 부분은 마야문명에 대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란다가 쓴 원본은 유실되었고, 1616년의 요약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다.
송영복 교수가 스페인어로 된 원전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멕시코 유학 시절인 1995년부터이다. 주석과 설명을 담아 20년 후인 2014년에 탈고하였다. 본문은 길지 않지만 본문의 몇 배가 되는 각주와 해설이 덧붙어 있다. 탈고했지만 선뜻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오죽하면 "이 책이 정말 출판사를 말아먹을까요?"라며 독자와 만나고 싶다는 하소연도 했다.
에스빠냐 신부의 눈으로 마야문명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은 한국어로 된 최초의 책이다. 송영복 교수 덕분에 "지금 당장은 많이 팔리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한국어 번역과 주역, 해설본을 어디에선가는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디에고 데 란다Fray Diego de Landa/송영복 편역/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20220428 448쪽 22,000원